[인성교육 칼럼 15] 감성을 키우는 음악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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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2007년 우리가 막 필립스 엑시터에 부임했을 때였다. 장 선생은 작곡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새로운 도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두가지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오케스트라 초연 프로젝트가 그 중 하나. 작곡 렛슨을 받는 학생들에게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하도록 한 뒤, 장 선생이 지휘를 맡았던 학교 오케스트라가 봄학기 정기 연주회에서 초연하는 프로젝트다.

대부분 음대가 아닌 일반 대학에 진학할 고등학생들이 오케스트라 곡을 직접 작곡하는 것만으로도 야심 찬 일인데, 이 곡이 연주까지 되어야 하니 그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과연 오케스트라 곡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반신반의했다.

“여기서 첼로가 더 묵직하게 소리를 내고, 그다음 바이올린이 좀 더 섬세하게 이어지도록 해야겠어.”

학생들은 차츰 각 악기별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곡 전체를 컨트롤하는 방법들을 배워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는 곡을 완성했다.

자신들의 곡이 오케스트라에 의해서 초연된 그날 성취감으로 상기된 학생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소리가 이렇게 연주로 완성되다니!”

음악을 통한 또 하나의 도전이 감격으로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의 작품들은 친구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친구가 작곡한 곡을 연습하면서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음악성을 대하게 된다. 고전음악과는 또 다른 각자의 스타일을 반영한 곡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전음악에서는 사용되는 않는 연주법이나 기보법을 접할 때도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이러한 새로움은 또 하나의 배움이다. 무엇보다 친구의 작품을 한 학기 동안 연습하여 함께 완성해 간다는 것에 큰 보람이 있다. 서로가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필립스 엑시터에 재직했던 4년 동안 11개의 새로운 작품들이 오케스트라 초연 프로젝트를 통해서 탄생되었다.

 

또 하나는 작곡 리사이틀이다. 작곡 렛슨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실내악 곡을 발표하는 무대이다. 음대에서는 각 과마다 이런 행사들이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작곡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주축이되어 리사이틀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학생들은 꾸준히 곡을 써야 하고 악기를 다루는 친구 중 적당한 연주자를 찾아 리허설과 최종 작품 발표를 함께 해야 한다. 작곡가와 연주자로 만난 학생들은 곡을 완성해 가면서 서로의 음악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공감해 나간다. 그래서 작곡 리사이틀 역시 작곡 자체도 중요하지만, 연주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또 다른 배움의 계기가 된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할 계획은 아니었지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로니는 말했다.

“작곡 리사이틀 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급우들과 감정을 나누고 서로 협력해 가면서 새로운 배움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이러한 오케스트라 초연 프로젝트와 작곡 리사이틀은 필립스 엑시터의 핵심 수업 방법이라 할 수 있는 하크네스와도 잘 부합한다. 특히 작곡은 교사가 가르친다기보다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소질을 개발하고 찾아가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학생이 주체가 되고 교사가 조력자가 되는 하크네스의 원리와도 닮아 있다. 또한 서로 신뢰하며 협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작곡을 하는 과정, 연주자를 찾는 과정, 작곡자와 연주자가 함께 리허설 하는 과정, 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은 기술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감성적인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연주자가 작곡자에 대한 존중, 작곡자가 연주자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요 감성적 교감이 바탕되지 않으면 도저히 결과를 낼 수 없는 일들이다.

 

예술 부분과 관련하여 필립스 엑시터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바로 예술에 열정을 뿜어내는 학생들이 대부분 학과목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 예술을 가르치더라도 학년이 올라가면 이것이 학업에 방해가 될까 봐 그만두게 한다. 하지만 필립스 엑시터의 예술 수업을 통해 한 가지에만 갇혀있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것이 오히려 학과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자신의 재능이 귀하게 여겨지고 맘껏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그것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단단해 지는 것이야 말로 학업에도 집중하여 좋을 결과는 내는 바탕이 아닐까?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