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26] 기숙사 생활속의 공동체 의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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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기숙사에서 어드바이저로 근무하면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기 전까지 학생들의 생활 태도를 면밀히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생활 태도가 곧 학습 태도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른 아침 시간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10대 아이들에게는 더할 것이다. 하지만 기숙사에는 아침마다 뺨에 입을 맞추며 깨워 주는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알람이 울리면 스스로 일어나 씻은 뒤 학교 식당의 조식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도착해 아침 식사를 챙기고 혼자 수업 준비를 끝내서 8시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 ‘5분만 더’를 외치고 돌아눕는다고 5분 뒤에 깨워 줄 사람은 없다.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아침을 굶을 수도 있고 수업을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모두가

같은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도,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없다.

 

모두가 바쁜 월요일 아침. 나도 서두르며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기숙사 복도가 갑자기 떠들썩했다. 10대 학생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오죽하랴!

“에이미, 에이미 어디 갔어? 거실에서 만나서 같이 1교시 수업에 가기로 했다고!”

“욕실에도 없는 것 같은데 약속을 잊고 먼저 간 건 아닐까?”

“에이미! 아직 자고 있으면 어떡해.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아침 식사할 시간도 없다고!”

에이미는 신입생인데 주말마다 한 시간 거리의 보스턴에 있는 집으로 가는 것을 보면 엄마가 챙겨 주는 데 익숙한 듯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기숙사 생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해 기숙사 언니들이 챙겨 주느라 소란스러웠던 것이다. 알고 보니 에이미는 아침 수업에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일이 잦았고, 과제물을 미처 챙겨오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수업 스케줄을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도 에이미는 스스로 생활을 관리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학습 태도에 있어서도 실수를 줄여 갔다.

 

실제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자신의 생활을 효과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UC어바인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고등학교와 비교해 수업에서도 생활에서도 늘어난 자유가 어찌나 신기하던지! 신입생 때 내가 들은 개괄 레벨 강의들은 워낙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였기 때문에 출석체크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자유를 누린다는 명목으로 괜스레 강의를 빠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캘리포니아 뱁티스트 대학에 재직하던 시절에도 많은 대학생들이 갑자기 주어진 법적 성인으로서의 자유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때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문제를 겪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시간 관리에 실패하면서 생기는 것들이었다. 학생들 중에는 고등학교에 비해서 현저히 줄어든 강의 시간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명목으로 아르바이트를 무리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수업 준비를 하거나 과제물을 할 시간을 빼앗아 공부에 소홀해지

도록 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이 친구가 이 파티에 가자고 하면 따라가고, 저 친구가 저 활동을 하자고 하면 따라다니면서 이성교제나 친구와의 관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 시간 관리에 실패하기도 했다.

 

필립스 엑시터에서의 기숙사 생활은 대학에서의 혼돈을 미리 예방해 주는 역할도 한다. 기숙사가 학생들이 더 큰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주는 것이다. 이 밖에도 기숙사는 아직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모여 있어 여러 가지 문제가 늘 존재한다. 지금까지 누군가와 함께 방을 써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처음으로 해 보는 기숙사 생활에 적잖이 부담을 느끼면서 룸메이트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명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하거나 꽃단장을 하고 싶은데 다른 한 명은 아침잠을 설치는게 너무 싫은 경우라든지, 룸메이트끼리 사이가 지나치게 좋아서 밤새 이야기하고 노느라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 부엌 등의 공동생활 구역도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소한 어려움들이 있다. 그래서 수업보다도 기숙사 생활이 어려워서 보딩스쿨을 포기하는 학생도 종종 볼 수 있다. 기숙사는 스스로가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답답한 어항이 될 수도 있고 완전한 순환 구조를 가진 커다란 수족관이 될 수도 있다. 필립스 엑시터는 수족관에 적응한 학생들이 훗날 바다라는 더 큰 자유를 만났을 때 두려움 없이 맘껏 헤엄칠 수 있도록 테두리 안의 자유를 선사하고 있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