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9] 하크네스 테이블 – 3 창의성의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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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크네스 테이블 – 3 창의성의 수업

CHOI-JANG

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얼마 전 서울대 이혜정 교수의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의 최고의 대학 서울대에서는 기계적으로 교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숙지하여 그대로 되뱉어 낼 줄 아는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창의성이 결여된 한국의 교육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교수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면 과제물의 성적이 낮게 나오기 때문에 스스로의 창의성을 죽이고 앵무새처럼 교수가 강의한 내용 그대로 재현함으로 인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강의 중 학생들이 적는 강의노트는 마치 교수의 강의 원고처럼 정리가 되고, 교수가 한 농담까지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적고 암기해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학생들의 고백을 담고 있다.

 

학생들은 교수의 지도를 따라가기 나름이고 교수들은 대학의 지침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한국의 대학들이 ‘창의적 인재를 양성’ 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학생들이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두 필자에게는 한국 대학 교육의 인사이드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이자 과연 미국의 대학은 얼마나 나은가를 돌아보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고, 대학/대학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크네스 토론 수업에서는 교사가 강의를 하지 않는다. 즉, 받아 적고 달달 외울 강의 내용이 아예 없다.

대신 하크네스 토론 중 학생들은 급우가 발표한 내용에 반응할 준비를 한다. 그 준비란 외우기 위해 듣거나 수동적으로 필기하는 것이 아니라, 급우가 발표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그 내용을 머리속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더하는 것이다. 급우의 발표에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그러면 또 다른 급우는 거기에 또 다른 생각을 추가하게되고… 이것이 하크네스 테이블에서의 ‘반응’이다. 수업시간 전체가 이러한 ‘반응’으로 가득하고 매주, 매학기 하크네스 테이블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준비하고 토론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창의력 없이는 기대하기 힘든 수업이다. 이러한 수업을 통해서 창의성이 길러진다. 잘 외워서 재현해 내는 능력이 아닌, 논제를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준비하고 다른 급우의 의견들을 토의하는 능력, 이것이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구사하는 수업에서의 창의력이다.

 

창의적 하크네스 수업의 최고봉은 수학 수업에 있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학을 배울 때 원리 또는 공식을 먼저 배우고 ‘자, 이제 그 공식을 사용하는 문제들을 풀어 보자’는 식으로 배웠을 것이다. 한국, 미국에 상관없이 대부분 수학을 그렇게 배운다.

하크네스식 수업을 하는 많은 학교들이 있지만 대부분 수학은 하크네스 토론을 통해 배우지 않고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배우는 대로 수업을 한다. 하지만 모든 과목에서 하크네스 토론 수업을 하는 필립스 엑시터에서는, 수학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풀이에 도전하게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온 방법을 수업시간에 공유하고 토론하며 원리 또는 공식을 유추해 내는 방법이 하크네스 수학이다. 전날 배운 공식으로 문제를 풀어와서 교사에게 평가 받고 정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문제 풀이의 생각 과정을 서로 분석, 평가하고 나누는 가운데 원리를 ‘창조’한다. (물론 완전한 ‘창조’는 아니다 – 이미 알려진 공식을 재발견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과정은 창조와 다를 바 없다.)

 

창의적인 수업에서 훈련을 받게 되면 대학에 진학해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대학 수업이 쉽다는 것이다. 배우는 내용이 쉽다는 말이 아니라 창의적인 토론식 수업에 이미 베테랑이 되어있기에 세미나 형태의 수업이 전혀 낯설지 않을 뿐 아니라 강의식 수업을 들을 때도 급우들의 발표 내용을 들을 때처럼 분석하고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합성(synthesize) 해낼 수 있는 능력, 즉 주체적 학습의 ‘내공’을 이미 가지고 있기에 쉬운 것이다.

 

분석적으로 듣는 능력을 기르고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토의하고 종합하는 창의적인 학업 능력을 기르는 것과 ‘인성’과는 별개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창의성’이 지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인격적인 교육 목표 아래 창의적인 사람으로 교육하는 것과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교육하는 것은 사실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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