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11] 하크네스 테이블 – 5협력없이는 하크네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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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칼럼 (11) 

 

CHOI-JANG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하크네스 테이블 – 5협력없이는 하크네스도 없다.

 

Ken (가명)은 내가 처음 필립스 엑시터에 재직하면서 첫 학기에 9학년 기초 생물학을 가르친 학생이다. 워낙 똑똑하고 과학에도 관심이 많이 눈길이 갔다. 첫날 첫 수업부터 어른스런 목소리로 고급 단어를 남발해 가며 어찌나 ‘나는 진지하고 스마트한 학생이야’라는 표시를 내던지.

Ken은 그렇게 첫날부터 그 수업에서 비공식적으로 리더 자리를 잡더니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록 오직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데만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혹시라도 누군가가 논리에 허점을 보이거나 허튼 지론을 한다 싶으면 토론 테이블에서 거칠게 공격해 왔다. 급우들의 질문은 모두 자기가 대답하려고 했고, 자기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직 교사의 ‘정답’만 듣고 싶어 했다. Ken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 내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돌리면Ken은 급우들의 생각은 상관 없이, 함께 토론하기를 회피하고 은근히 나를 재촉했다. 몇몇 학생은 워낙 공격적인Ken에게 꼬투리라도 잡힐까봐 불편해 했다.

Ken은 필립스 엑시터 언어로 ‘하크네스 워리어 Harkness Warrior’ 또는 ‘하크네스 전사’라고 부르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하크네스 워리어란 수업 시간을 마치 전투처럼 인식해 수업을 장악하고 다른 학생들을 이기려 드는 학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초짜’ 교사였던 나는 처음에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Ken이 결석한 어느 날 하크네스 수업이 얼마나 아름답게 흘러가던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한 명의 하크네스 워리어가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드디어 눈을 뜨게 되었다.

다음 날, 수업에 참석한Ken이 수업 내용을 어려워하던 한 급우의 질문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나는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무례해서는 안 되지. 과학은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존중과 협력은 과학과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란다. 내가 하버드에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도 바로 이러한 정신이야.”

이런 깨달음은 켄 뿐 아니라 학생들 모두가 배워야 하는 가치였다.

 

다행히도 이 일화는 해피엔딩이다.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다시Ken에게 고급 생물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 때Ken은 한 학년 위인 12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고급 생물학은 AP (Advanced Placement)보다 높은 수준의 수업이라 보통 12학년이 되어 듣는 수업이다.) 이 12학년 학생들은 워낙 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을 뿐 아니라 다른 과학 수업을 통해 배운 사전 지식도 많았고 또 4년간 하크네스 수업에 훈련이 된 성숙한 하크네스 전문가들이었다. Ken은 그 속에서 다른 학생들의 발표 내용과 의견을 주의 깊게 들으며 협조적인 태도로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Ken에게서 예전의 하크네스 워리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졸업할 즈음이 되었을 때Ken은 하크네스의 장점만 남은 어른스런 모습이었다.

하크네스 토론 수업은 결코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중과 배려를 통해 함께 배워 가고자 하는 데 가치가 있다. 내가 만난 최고의 하크네스 학생들도 결코 자신의 지식만을 앞세우는 똑똑하기만 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수업의 흐름을 읽어 가는 가운데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내용을 내어 놓는 학생. 다른 학생들과의 존중과 협력을 통해 함께 배움의 장을 만들어 가는 학생들이었다.

 

내가Ken을 수업 시간에 가르치지 않은 2년 동안 어떤 계기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확신하건대 어떤 한 순간의 계기가 아니라, 필립스 엑시터의 공동체에 자리잡게 되면서 존중과 협력의 관계를 배우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하크네스 워리어들이 급우과 교사 등 테이블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본인과 관계된 공동체로 여기게 될 때 존중할 수 있게 되고 진정한 하크네스 멤버가 된다.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야만 공부가 되는 하크네스 수업 환경에 적응하고 그 원리 속에 협력의 가치를 배울 때 급우와 교사 간의 관계형성이 생기게 된다. 배움에 있어서 이러한 존중과 협력의 관계형성은 배움의 내용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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