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트럼프 그리스도? 바이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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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트럼프가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책을 제시할 때, 어떤 이가 그를 고레스에 비유하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다. 고레스는 고대 바사(페르시아)의 첫 왕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사야 45:1의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메시아 고레스에게 말씀하셨다”가 된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며 이것을 그리스어로 직역한 것이 ‘그리스도’(크리스토스)이다. 그래서 헬라어 구약성경인 「70인역」(LXX)은 이 구절을 ‘나의 그리스도에게’(τῷ χριστῷ μου Κύρω)라 번역했다. 고레스 덕분에 유대인들이 70년의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레스의 정책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는 신학적 해석이지 그가 500여년 뒤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신(前身)이라는 말이 아니다.

요한복음은 헬라어권의 독자들을 위해 ‘메시아’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번역하여 풀어주면서 헬라어로 ‘그리스도’란 뜻임을 알려준다(요 1:41). ‘그리스도’라는 말은 원래 그렇게 보통 명사였다. 왕, 제사장, 선지자 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임명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름을 그 머리에 부었다(출 29:7, 삼상 10:1, 왕상 19:16).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기름 부음’은 임명 또는 위임의 행위였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요즘 표현으로 ‘위임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당시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사 45:4)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셨고 그것을 이사야서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정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구약 중간시대에 즈음하여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어떤 한 사람의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그 한 메시아가 예수님이셨다. 그래서 같이 붙어 다니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에서 동사를 생략한 형태의 신앙고백이었다.

지금도 일부 영미권 문외한들은 ‘그리스도’(Christ)를 예수님의 성(姓) 정도로 잘못 알고 있다. 성경을 통해 확인되듯이 고대 유대인들에게는 소속 가족을 가리키는 성(姓)이 없다. 지파가 있었지만 지파는 성으로 통하지 않았다. ‘예수 유다’ 또는 ‘바울 베냐민’이란 표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눈의 아들 여호수아’, ‘이새의 아들 다윗’처럼 아버지의 이름이 따라다니기는 했다. 현대 유대인들이 지닌 서구식 성(姓)은 이들의 오랜 디아스포라 생활 중 살고 있던 곳의 풍습을 따라 이런 저런 기원(基源)을 좇아 어느 시점에서 골라 달아 쓰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전수된 것일 뿐이다. 그렇듯이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성이 아니다.

신념의 대립이 격화된 이 시대 양 진영의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었다. 트럼프나 바이든이 과연 미국을 위한 ‘그리스도’가 될까? 물론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를 보통명사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