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하나님께서 주식회사란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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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성경의 여러 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 하나가 ‘기업’이라는 말이다. 주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애가서 기자는 이런 고백을 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애 3:24). 자본주의 문화 속에 사는 우리는 순간적으로 ‘회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식회사’라는 말씀인가요?

개역성경에서 사용된 단어인 ‘기업’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基業이지 企業이 아니다. 즉 ‘대대로 물려오는 업과 자산’이란 뜻이지 ‘조직체로서의 회사’를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기업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인 ‘헬렉’은 본래 ‘분깃’ 즉 주어진 ‘부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특정인이나 그룹에 귀속된 땅이나 재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주신 약속의 땅과 그 땅을 각 지파가 배당 받아 나눠가질 때 주어졌던 분깃을 지칭하면서 그 의미가 좀더 특정화되었다. 그러니까 헬렉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각 지파, 각 가족에게 주어진 자기 토지다. 이렇게 ‘헬렉’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존의 터전으로 삶의 근간(根幹)이었다.

그렇다면 애가서에서 말하는 바 “여호와=기업”은 도대체 무슨 공식일까? 이것은 원래 레위 지파에 적용되던 개념이었다. 다른 지파에게는 자기 몫이 주어졌지만 그들 가운데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레위인들에게는 땅, 즉 일반적 의미의 기업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정된 자산인 없었던 레위인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여호와가 나의 기업’이란 고백을 했다(민 18:20, 신 10:9).

애가서 기자(記者)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 약속의 상징인 땅은 바벨론에 의해 짓밟혔다. 경제적 파산이었다. 그들의 지도자였던 왕은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매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정치적 파산이었다.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서 중재를 하던 제사장들은 포로가 되어 강제 이주를 당했고 하나님의 집이라 믿어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하리라 추정했던 그 견고한 성전마저 비참하게 붕괴되었다. 종교적 파산이었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의지하던 모든 것이 다 무너진 완전 파산이었던 셈이다.

이런 총체적 파산 가운데 애가서 기자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은혜로 주셨던 정치, 경제, 종교체제를 우상화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다가 결국 폭삭 망했음을 절감한다. 그런데 이 깨달음의 순간 희망이 보인다. 그들의 기업을 죄로 인해 잃었으나 그 기업을 주신 하나님이 여전히 그와 함께 하심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진짜 기업은 땅이나 왕이나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이었구나…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팬데믹’으로 삶의 기반이 이렇게 쉽게 붕괴되는 것을 목격한 지금, 우리는 인본주의적 오만과 우상숭배를 깊이 뉘우치며 정치, 경제, 문화가 우리의 기업이 아니라 그것들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 기업이심을 다시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