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27] 예수님에게 삐딱했던 친동생을 추적해 본다

862

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신약성경을 읽다 보면 삶이 180도 변했는데 그 계기를 잘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인물이 한 사람 있다. 바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다. 그가 쓴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윤리와 사회적 정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이름을 걸고 신학적 노선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한 분파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 야고보는 형님에게 아주 회의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집안 돌보지 않고 돌아다니며 끼니도 제대로 잇지 않는 형님을 못마땅해 했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0-21). 형님 때문에 손가락질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그래서 형님을 면전에서 조롱하기도 했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3-5). 많이 삐딱하다.

그런데 이 야고보가 나중에 보니 크게 달라졌다. 일세기의 유대역사를 기록한 요세푸스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아그립바 왕은… 아나누스를 대세장직에 명하였다… 아나누스는 기질이 거만하였고 매우 무례하였다… 따라서 아나누스는 산헤드린 공의회를 소집하여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혹은 그의 동료들]을 산헤드린 앞에 세우고 율법위반자로 그들을 고소하여 돌로 쳐 죽이도록 보내었다. 예루살렘 시민들 중 공평하고 율법 위반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아나누스가 행한 일을 혐오스럽게 생각하였다” (「유대고대사」20.197-200).

비기독교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주후 62년에 발생한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기독교인들의 대표격으로 야고보를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 이상 가는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이방인들의 할례 문제로 모였던 예루살렘 회의에서 격론을 거치고 난 뒤 최고 권위자의 입장에서 마지막 마감 발언을 하여 지시 사항을 내린 것은 야고보였다(행 15:13-21).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그곳을 지키면서 대표하고 있던 이도 “주의 형제 야고보”였으며(갈 1:19), 바울은 그를 ‘기둥같이 여김을 받던 지도자’라고 칭한다(갈 2:9).

예수님에게 그렇게 비협조적이었던 야고보가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가 있었는지 참 의아하다. 성경에는 그의 변화 이유나 간증의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의 변화 이유를 밝혀주는 확실한 단서가 바울의 편지 한 구석에서 발견된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고전 15:3-7). 여기서 의문의 실타래가 풀려나온다.

지성적 회의주의자 야고보가 불신자에서 교회 최고위 지도자가 되었고 순교에까지 이르게 된 계기는 다시 사신 형님 예수와의 만남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를 만나면서 이해하기 힘든 변화를 겪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미스터리의 인물 야고보였다. 혹시 우리 가운데 야고보가 있는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