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49] ’서머타임’, 그냥 시간을 아끼자는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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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며칠 전 눈이 내렸는데, 벌써 속칭 ‘서머타임’이라 하는 ‘일광시간절약제’(Daylight Saving Time)가 3월 13일에 시작된다. 새벽 네 시면 일어나야 하는 나에게는 신체 리듬을 급격하게 바꾸며 갑자기 한 시간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피로감이 있지만 해가 길어져 하루를 훨씬 길게 사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어쨌든 귀중한 시간을 아껴 더 잘 활용하려는 제도적 노력의 일환이다.

이때면 생각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때가 악하다’는 말의 그리스 원문을 직역하면 “날들이 악하다”(days are evil)의 뜻으로 요즘 상황에서 더욱 실감이 난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이 지난 2년의 시간을 옥죄며 삶의 질서를 교란, 대책 없이 우울하게 하더니 그 마수를 아직 다 뿌리치지도 못했는데 이번에는 3차세계대전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를 하릴없게 불안으로 몰아넣으니 말이다. <도깨비>의 명대사 ‘모든 날이 좋았다’던 낭만적 읊음이 이제 너무 소원(疎遠)하고 오히려 ‘모든 날들이 악하다’는 에베소서의 경고가 더 피부에 닿는다.

우리 성경에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로 의역된 그리스어 ‘엑사고라조메노이 톤 카이론’(ἐξαγοραζόμενοι τὸν καιρόν)은 문자적으로 ‘때를 구속(救贖)하라’(redeeming the time)의 뜻이다. 똑 같은 동사 ‘엑사고라조’(ἐξαγοράζω)가 사용된 갈라디아서 3:13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Christ redeemed us from the curse of the law…)라고 읽힌다. ‘속량’(贖良), ‘몸 값을 받고 종의 신분을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하던 일’(국어사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대속’(代贖) 또는 ‘구속’(救贖), 이것이 ‘엑사고라조’의 뜻이다. 잃어버렸던 것을 ‘대가를 지불하여 다시 사는 행위’다. 이렇게 시간을 ‘엑사고라조’ 하라는 뜻이 무엇일까? 악한 날들을 다시 사서 아름답고 선하며 자유로운 ‘좋은 시간’으로 해방시키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속(救贖, redeem)해야 하는 시간은 ‘카이로스’(καιρός)이다. 그리스어에서 시간을 가리키는 두 단어 ‘크로노스’(χρόνος)와 ‘카이로스’는 함의가 다르다. ‘크로노스’는 연월일시(年月日時)로 쪼개 계량화 되는 객관적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인격체의 목적 의식이 들어가 있는 주관적, 정성적 시간으로 적절한 때 또는 기회(opportune time)의 의미를 갖는다. 모든 것에 ‘적절한 때’를 노래하는 전도서의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다(전 3:11).

그래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로 의역된 에베소서 5:16의 원문의 뜻을 충분히 살려 풀어 써 본다. “지금 날들이 많이 악합니다. 그러니 이 악한 날들의 카이로스, 즉 적절한 시간을 믿음으로 구원해내 되찾아 잘 활용하도록 하십시오.” 그냥 시간을 아껴 써 자기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오게 하자는 소극적 방어의 말이 아니다. 잘못된 것에 사로잡힌 이 시대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로 되돌이켜야 한다는 명령이다.

개인의 삶은 결국 공간과 시간 속에서의 생각과 활동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주도하여 추하고 악하게 때묻은 삶의 날들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도록 마음을 다하라는 가슴 절절한 권면이다.

일광시간절약제를 적용하는 이 때, 우리는 단순히 세월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개인적 삶을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되돌이키기 위한 ‘시간 구속’을 다시 결연한 의지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