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54] 예수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였을까?

834

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한국이 또 큰 선거를 치르면서 서로 다른 진영이면서도 애국애족의 목소리가 높았다. 신약의 복음 차원에서 볼 때 분명히 하나님 나라는 지상(地上)의 그 어떤 국가보다 우선한다. 하나님 나라는 민족주의나 애국심의 볼모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교회의 애국애족 성향이 잘못된 것일까?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국지적 집단 이기주의가 배어 있는 애국심이나 애족심을 가질 때 특정 대상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우상화를 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질문은 그 자체가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 가장 고아한 이념이라도 죄인들이 모여 사는 인간 세계에서는 절대 100 퍼센트 순수한 형태로 현실에서 구체화되지 못한다. 언제나 최고의 선(善) 속에 악(惡)이 포함되어 있고 최악의 행위 속에도 선이 묻어 있다.
예수께서 종종 유대 땅을 벗어나는 행적을 남기셨고(막 7:31) 요한복음의 경우 헬라인들(이방인)의 방문을 하나님 나라 도래의 표징으로 보기도 하셨지만(요 12:20-23) 대부분 그의 사역은 이스라엘의 경계 안쪽의 유대인들을 지향했다. 예수께서는 적어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소명이 이스라엘에 국한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어느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에 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 했다. 예수께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제자들이 여인의 집요한 요구를 환기시키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고 매정하게 응수하셨다. 물론 야멸차게 들리는 예수의 이 대답은 그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 대조의 세팅이었지만 실제로 예수 사역의 경계를 언급한 것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보내면서 명하실 때도 이 점을 명시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
예수께서는 자신의 우선적 지상 사역의 범위를 이스라엘로 삼으셨다.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모양으로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였고 자신의 대속적 죽음의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기 전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소임을 다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대리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유대인이라는 민족에 갇혀 성육신 하셨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인간 되심’(incarnation) 속에서 불가피했다. 보편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민족주의는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필요악적 현실이다. 그 안에 갇혀서 하나님 나라를 배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현실적 사랑의 문화적 공간이기도 하다. 예수는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 됨에 충실하셨고 자신의 동족이며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언약적으로 신실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애국자였는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