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더 해프 오브 잇(The half of It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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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십대의 끝자락은 쉽지 않다.  외모나 능력에 대한 열등감은 기본이고, 자신의 꿈을 발견하기도 전에 좌절하고 포기한다. 친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 시기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혼돈스러울 뿐이다. 하물며 보수적인 백인들이 주류인 시골 마을에 사는 아시안 이민자의 딸이라면 어떻겠는가. 중국계 여류 감독 ‘앨리스 우’의 이 작은 영화는 신선하고 솔직하며 웃기고 따뜻하다. 감독 개인의 체험이 녹아있는 스토리는 탄탄하고 촬영과 연출이 빼어나다. 주인공 소녀의 고군분투를 지켜 보면서 공감과 응원을 보내게 된다.

워싱턴 주 외딴 마을 ‘스콰하미쉬’, 17살 ‘엘리 추’는 홀아비가 된 아버지와 둘이 산다. 중국에서 공학 박사였던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철도청에 지원했지만 부족한 영어 때문에 평생을 시골역 역장으로 지낸다. 학교의 유일한 아시안인 엘리는 공부도 잘하고 문학을 좋아하며 음악에도 재능이 있다. 그녀는 동급생들 에세이나 숙제를 대신 해주고 용돈을 번다. 늘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며 진바지에 구세군 티셔츠만 입는 엘리는 학교에서 외톨이고 남자애들에게 놀림을 당하곤 한다. 엄마가 죽은 후 텔레비젼에서 옛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아빠를 대신해서 역 부스에서 매일 수신호로 기차를 통과시키는 역할도 엘리의 몫이다. 어느 날 학교 풋볼 선수인 ‘폴’이 짝사랑하는 ‘에스터’에게 연애 편지를 써줄 것을 부탁한다.

에스터는 엘리가 반주자로 봉사하는 교회의  집사 딸인데 아름답고 상냥하고 미술에 재능이 있다. 사실 엘리는 오래 전부터 에스터를 동경해 왔다. 집에 전기가 끊길 위험에 처하자 돈이 필요해진 엘리는 마지못해 연애 편지를 써준다. 원래는 한번만 쓰기로 했지만 엘리의 편지에 에스터가 답장을 하고,

폴의 간청으로 엘리는 계속해서 편지를 쓰게 된다. 둘 다 책을 좋아하고 예술에 대한 교감이 이루어지면서 엘리는 에스터에 대한 진심을 폴의 이름으로 전한다. 또 에스터의 화가로서의 재능을 알아 본 엘리는 그녀를 격려해서 꿈을 갖게 만든다. 단순하고 성질이 급한 폴은 편지에 만족 못하고

에스터에게 문자를 보내서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첫번째 데이트는 말을 할 줄 모르는 폴의 거듭된 실수로 어색하게 끝난다. 이후로 엘리는 에스터에게 폴의 이름으로 문자를 보내며 소통을 계속하고 다음 데이트를 위해 에스터의 모든 것을 조사하며 폴을 훈련시킨다. 순수한 폴과 엘리가 에스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웃기고 공감이 간다.  폴과 엘리는 시간이 흐르며 서로를 이해하고 친해지는 데 식당 아들인 폴은 자신만의 쏘세지 레시피를 개발하고 엘리 부녀에게 시식 시킨다. 엘리의 재능을 아까워 하는 영어 선생님은 명문  ‘그리넬 칼리지’ 진학을 권하지만 엘리는 아버지 때문에 망설인다. 한편 에스터는 왠지 자신을 잘 이해하고 교감하는 부분이 많은 엘리에게 호감을 느낀다. 데이트 후 폴과 에스터의 키스 장면을 본 엘리는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데 결국 모든 것이 들통나고 세 청춘은 혼돈과 성장통에 괴로워 한다. 엘리는 에스터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에스터는 미대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말한다. 엘리가 떠나는 날 폴은 자신의 레시피로 만든 소세지를 전하며 그녀를 격려한다.

현대판 청춘 ‘시라노 드 베르주락’ 같다고 할까. 친구의 이름으로 자신이 연모하는 대상에게 편지를 쓰는  주인공 엘리. 아시안 이민자의 딸, 성정체성을 깨닫는 십대, 보수적인 백인 기독교 마을에서 살아남기 등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차분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감독의 역량이 놀랍다. 사랑에 대한 그리스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정의로 시작하는 영화 도입부는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과 함께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인간은 원래 하나였던 우리의 반쪽을 찾느라 일생을 보낸다는 데 그게 과연 사랑에 대한 정답일까. 엘리의 아버지가 폴에게 들려주는 독백이 핵심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면 절대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거야.”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이니 찾아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