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소년, 소녀를 만나다 (Let the Right One I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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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스웨덴의 ‘스톡홀름’ 교외. 열두 살 ‘오스카’는 부모가 이혼하고 엄마와 산다.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 못된 ‘코니’ 패거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오스카네 옆 아파트에 중년의 남자와 오스카 또래의 소녀가 이사온다. 남자는 두꺼운 마분지로 모든 창문을 가린다. 추운 겨울 밤 오스카는 아파트 앞 공터에서 옆집 소녀 ‘엘리’를 만난다. 창백한 얼굴에 검은 머리카락의 엘리는 외투도 안입고 맨발에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오스카는 엘리와 밤마다 공터에서 만나 함께 앉아있거나 얘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다.

엘리는 인간의 피를 마셔야 살 수있다. 그녀를 돌보는 남자 ‘하칸’은 엘리에게 피를 공급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서 그 피를 통에 받는다.

하칸은 이사 온 마을에서 첫 사냥을 나갔다가 실패하고 굶주린 엘리는 마을 남자를 공격해서 허기를 채운다. 오스카는 생일을 기억 못하는 엘리가 안스러워 자신이 갖고 놀던 루빅 큐브를 선물로 주고 엘리는 하루 만에 큐브를 맞춘다. 친구가 생긴 오스카의 삶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오스카는 학교에서 모르스부호를 배워서 엘리에게 가르쳐주고 둘이서 벽을 통해 모르스 부호로 대화한다. 엘리는 오스카에게 코니가 괴롭히면 맞서서 싸우라고 격려한다. 하칸이 다시 피를 구하러 나갔다가 실패하고 경찰에 잡힌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면 엘리가 위험해질까봐 염산을 끼얹어 얼굴을 망가뜨린다. 엘리는 밤에 하칸이 입원한 병실을 찾아간다. 하칸은 배고픈 엘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죽는다. 혼자가 된 엘리와 오스카는 서로에게 유일한 위안과 기쁨이다.

학교에서 단체로 연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간 날, 코니는 오스카를 얼음 구덩이에 빠트리려고 밀치지만 오스카는 용감하게 대항한다. 엘리가 오스카에게 놀러간다. 뱀파이어는 초대를 받아야만 방에 들어 갈수 있다. 초대의 말을 듣지 않고 방에 들어 온 엘리가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광경을 보고 오스카는 울부짖으며 엘리를 껴안는다. 엘리는 자신의 운명을 설명하고 나이를 묻는 오스카에게 아주 오랫동안 열두살이었다고 말해준다. 마을 남자가 낮에 엘리의 아파트에 침입하자 잠자던 엘리가 깨어나서 남자를 공격하고 피투성이 현장을 보게 된  오스카에게 작별을 고한다. 오스카는 학교 풀에서 코니 일당에 의해 죽을 위기에 빠진다. 물속에서 정신을 잃어가는데 갑자기 힘 센 손이 오스카를 풀장 밖으로 끌어올린다. 희미한 의식속에서 걱정스럽게 자기를 바라보는 낯익은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다시 혼자가 된 오스카가 기차를 타고 가는데 앞자리에서 똑똑똑하는 모르스 신호가 들린다. 오스카도 손가락으로 답을 한다.

스웨덴 작가 “욘 린퀴비스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수줍고 고독한 12살짜리 소년과 영원히 외톨이인 동갑내기 뱀파이어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눈내리는 스웨덴의 풍경과 쓸쓸한 겨울 밤은 눈부시게 매혹적이고 서정적이다. 기존 뱀파이어 영화들에서 보는 식상한 분장이나 사건들이 없다. 소년 소녀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섬세하고 곱다. 오스카는 불평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자기에게 무관심한 부모나 세상을 그냥 받아들인다. 총명하고 강인한 엘리는 오랜 세월 터득한 지혜로 자신의 운명에 따라 그저 묵묵히 생존한다. 불공평한 삶을 대하는 아이들의 천진함과 순수함이 어른들의 그것보다 훨씬 강인하게 느껴진다. 두 어린 배우의 무심하고도 처연한 연기가 뛰어나다. 아주 잘 만든 독특한 스웨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