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잃어버린 딸 (The Lost daughter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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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202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 후보였고 각본상을 수상한

배우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이 넷플릭스에서 상영중이다.

‘엘레나 페란트’의 2006년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는데 작가는 꼭 여자 감독이 연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모성을 주제로 한 심리 드라마로 사소한 사건들이 이어지며 불안과 긴장이 서서히 증폭되어 스릴러물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스 아티카 의 섬을 배경으로 한 촬영이 눈부시고 중년의 주인공이 겪는 현재와 과거의 그녀가 교차되며 빛과 어둠, 파도와 바람등의 소리가 극적으로  어우러진다.

40대 후반의 대학 교수 ‘레다’는 그리스 외딴 해변으로 혼자 휴가를 온다.

숙소 매니저인 ‘라일’은 친절하고 비치 바에서 일하는 ‘윌’과도 친해진다.

한없이 평온하던 레다의 해변에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남자들은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극성맞은 아이들은 시끄럽다.

불편해진 레다는  구석으로 물러나는데 끊임없이 칭얼대는 딸 때문에 절절매는 ‘니나’가 눈에 들어 온다.  예쁘고 매력적인 니나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남편 ‘토니’는  사업때문에 바쁘고 니나에 집착해서 매사를 통제한다. 니나는 딸을 사랑하지만 늘 피곤하고 잠을 못 자고 삶에 활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레다는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

역시 어린 나이에 딸 둘을 낳은 레다는 좋아하는 번역 일에 몰두할 수 없다.

엄마의 관심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두 딸 때문에 늘 지쳐있고 집안은 엉망이다. 남편은 가족을 사랑하지만 집안 일과 애들은 주로 레다 몫이다.

레다는 천천히 자신을 잃어가면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  그때 자신의 번역을 높게 평가한 ‘하디’교수를 만나고 그에게 빠진다.  하디와 헤어지고 레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쫒기로 결심하고 가족을 떠났다.

해변에서 놀던 니나의 딸이 없어진다. 레다는 아이를 찾아서 니나에게 안겨주고 이 일을 계기로 니나와 친해진다. 레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숨기고 아이는 인형때문에 난리를 친다. 레다는 헤어핀을 사서 니나에게 선물하면서  오래 전 두 딸을 떠났던 이야기와 니나가 겪는 지독한 우울증은 절대 없어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떠나는 날 레다는 니나에게 인형을 돌려준다. 니나는 불같이 화를 내고 헤어핀으로 레다를 찌른다. 밤길을 운전하던 레다는 부상때문에 차를 멈추고 혼미한 가운데 해변으로 걸어가 쓰러진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린 레다는 딸에게 전화를 건다.

연기파 ‘올리비아 콜맨’은 절제된 표정과 시선으로 복잡미묘한 레다의 심경을 뛰어나게 표현한다. 우리에게 낯선 아이리시 배우 ‘제시 버클리’는 불안하고 팽팽하게 날 선 젊은 날의 레다를 맨낯으로 보여준다.

한 인물을 시간 차를 두고 연기한 두배우는 모두 올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과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감독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치밀한 연출과 빼어난 촬영이 훌륭하다. 흔한 모성이 아니라 본능에 충실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 레다가 흥미롭고 공감이 간다. 니나가 어린 딸들을 버렸을 때의 소감을 묻자 레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한 대답이 충격적이고 신선하다.

“It felt amazing.”(너무 기분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