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참을 수없는 유혹의 가벼움(Chocolat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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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드디어 2월. 밸런타인스데이가 다가온다. 왠지 달콤한 것이 먹고 싶고 마법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즈음 거듭 생각하는 화두는, 늘 현재에 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느끼고 즐겨야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본 다크 초콜릿 같은 영화를 소개한다. 지금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이니 찾아보길 추천한다.

오래지 않은 옛날, 프랑스의 한적한 어느 시골에 전통을 중시하는 마을 사람들이 조용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고있다. 시장인 ‘레이노’ 백작은 조상 대대로 마을을 다스려 온 부와 권위로 주민들의 생활 전반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북풍이 부는 겨울 날, 고여있는 물같이 침체된 마을에 붉은 망또를 걸친 이방인 모녀가 나타난다. 아름답고 신비한 여인 ‘비안느’(줄리엣 비노쉬)는 딸과 함께 광장의 빈 건물을 세 내어 초콜릿 가게를 연다. 정성스런 준비 끝에 가게의 진열장에는 매끄럽고 이국적인 형태의 초콜릿들이 진열되고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사순절을 앞두고 마을 사람들은 단것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시장은 마을 사람들의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주일 미사 때 젊은 신부의 강론 원고도 직접 쓸 정도로 독선적이다.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나타나서 초콜릿과 케익으로 주민들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비안느가 불편하고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비안느는 상냥한 미소와 초콜릿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간다. 괴팍한 집주인 노파 ’아망드’는 비안느의 특제 코코아에  매료되어 외동딸에게 절연당한 사연을 털어 놓고 부부 사이가 메말랐던 마을 여자는 비안느가 권한 카카오 과자로 남편의 열정이 회복되어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독신인 할아버지는 비안느의 격려에 용기를 내서 평생 사모한 과부 할머니에게 초콜릿 상자를 선물하면서 애정을 고백한다. 남편에게 맞으며 살던 마을의 왕따 ‘조세핀’은 비안느의 초콜릿에 힘을 얻어 남편을 떠난다. 비안느는  빈 손으로 집을 나온 조세핀을 거두고 초콜릿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 시장의 비서로 일하는 아망드의 딸 ‘카롤린’은 남편이 죽고 혼자서 아들을 키운다. 카롤린은 당뇨 합병증인 늙은 엄마가 마음대로 사는 것에 화가 나 아들까지 할머니를 못만나게 한다. 오래 전 아내가 자신을 떠났음에도 사람들에게는 여행갔다고 둘러대며 체면을 지키려는 레이노 시장과 아들에게 인생을 걸고 모든 걸 간섭하는 카롤린은 메마르고 불행하다.  조세핀까지 합세한 비안느의 가게는 이제 마을의 쉼터가 되고 사람들은 초콜릿과 코코아를 즐긴다. 레이노 시장은 자신의 권위에 기죽지 않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비안느가 계속 거슬린다.

어느 날 집시들이 배를 타고 마을에 도착하고 강 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집시를 경멸하는 시장은 공문을 통해 그들을 철저히 보이콧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온 마을 사람들의 냉대에 물 한잔도 얻을 수 없던 집시의 리더 ‘루’(쟈니 뎁)는 자기들을 편견없이 받아주는 비안느의 따뜻함에 감동한다. 시장은 그녀의 가게에  금족령을 내린다.

아망드의 생일,  비안느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서 루의 배에서 파티를 열고 집시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 함께 어울린다. 아망드는 최고의 생일을 보내고 행복하게 숨을 거둔다. 루가 집시들과 떠나고, 아망드의 장례가 끝나자 비안느도 짐을 싼다. 조세핀은 비안느를 붙잡기 위해 그동안 배운 솜씨로 초콜릿을 만든다. 조세핀의 열정에 감동한 비안느는 마을 페스티발에 내놓을 초콜릿을 만들어 진열장에 장식한다. 페스티발 전날 밤, 시장은 몰래 진열장의 초콜릿들을 부숴 버리는데 초콜릿 한 조각이 그의 입으로 들어간다. 달콤한 맛이 혀끝에 퍼지고 시장은 미친듯이 초콜릿을 먹고 잠이 든다. 다음 날 세상이 바뀐다. 사람들은 비안느의 초콜릿을 마음껏 즐기고 시장은 자신을 옭아맸던 위선과 권위에서 해방되어 겸손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돌아간다.

매력적이고 엉뚱하고 달달한 영화이다. 화면 속 마을이 동화책 그림처럼 환상적인데 특히 비안느가 초콜릿을 만드는 장면들이 섬세하고 감탄스럽다. 온갖 종류의 초콜릿을 보면서 먹고 싶은 유혹을 참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을 죄로 취급하거나 자신과 다르면 배척하는 왜곡된 신앙때문에 사람들은 상처받고 불행하다. 영화 말미, 시장에게 조종당하던 젊은 신부가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로 펼친 강론은 짧지만 신앙의 핵심이 들어있다.

“오늘 저는 주님의 신성(神性) 보다는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말하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한없는 친절과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유혹을 물리쳤다거나 또는 (종교와 생활이 다른) 이방인들을 외면하는 것으로 우리의 선함을 증명해서는 안됩니다. 그보다는 재능을 발휘하고 삶의 모든 걸 껴안고 즐기며,우리와 다른 이웃도 받아들임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