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그 남자의 일생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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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엄마는 작년보다 더 작아졌다. 부서질 것 같은 버석한 몸과 촛점없는 눈으로 같은 질문을 계속 한다. 서울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보고 돌아설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엄마의 시간을 십년만 되돌릴 수 있다면. 아니 일년만이라도. 작년엔 노래도 따라 부르고 웃기도 했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빌려 본 영화를 소개한다.

한 늙은 여자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 밖에는 폭풍이 몰아친다. 그녀는 간호하는 딸에게   자신의 소지품중에 있는 낡은 노트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티켓과 사진들이 붙어있는 노트는 ‘벤쟈민 버튼’이라는 남자의 일생을 기록한 일기이다.  일기를 통해 평범하지 않은 벤쟈민과 그를 거쳐간 사람들의 삶과 사랑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펼쳐진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나는 날, 뉴올리언즈 의 ‘버튼’집안에 아들이 태어난다. 아내는 남편에게 아기를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아기를 본 남편은 충격을 받고 양로원 건물 계단에 아기를 버린다. 노인들을 돌보는 착한 흑인 여자 ‘퀴니’는 아기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인다. 아기는 온 몸이 주름으로 덮인 기괴한 모습이다. 퀴니는 아기에게 ‘벤쟈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껏 키운다. 벤쟈민은 노인의 모습을 한 채 자란다. 돋보기를  쓰고 머리는 벗겨지고 주름 투성이지만 정신은 보통의 남자 아이와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걷기 시작하고 양로원 노인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양로원 파티에서 벤쟈민은 붉은 머리, 푸른 눈의 ‘데이지’를 만난다. 그리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둘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사이좋은 친구가 된다. 벤쟈민은 계속 자라고 몸도 서서히 변한다. 근육도 붙고 치아도 단단해진다.     사춘기에 접어든 벤쟈민은 60대 몸을 가진 뱃사람이 되어 여러 곳을 여행한다. 가는 곳마다 데이지에게 엽서를 보낸다. 데이지는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벤쟈민은 뉴올리언즈로 돌아온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벤쟈민은 이제 50 대의 몸이다. 벤쟈민은 20대로 들어선 데이지의 방문을 받는다. 벤쟈민은 아들을 버린 죄책감으로 평생 괴로웠던 생부와도 화해한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 파리에서 발레리나로 활약하던 데이지는 차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절망한다.

벤쟈민은 40대로 접어들고, 역시 40대의 데이지가 그를 찾아온다. 둘은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고 행복하다. 데이지는 딸을 낳는다. 딸의 첫 번째 생일을 지내고 벤쟈민은 모든 재산을  남기고 사라진다. 자신은 계속 젊어지는데, 나이드는 데이지는 힘들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른 후, 늙은 데이지는 아동보호소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페허가 된 건물에 혼자 사는 열두살짜리 남자애를 데려가라는 것이다. 데이지는 몸이 어려진 벤쟈민과 재회한다. 데이지는 치매에 걸린 벤쟈민을 돌보고, 벤쟈민은 아기의 모습으로 데이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서 점점 젊어질 수 있다면, 하고 무심코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늙어가는데 나만 젊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벤쟈민과 데이지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걷다가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야 그들만의 삶을 산다. 시간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는다. 2009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포함 무려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특히 ‘브래드 피트’의 노인에서 소년을 오가는 놀라운 연기가 뛰어난 수작이다. 삶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