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내 생애 마지막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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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엄마는 7년 째 서울의 요양원에 계신다. 사교적이고 활달하던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매사에 의욕을 잃고 문밖출입을 끊었다.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고 요양원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재활과 오락도 열심이었는데 이제는 주로 누워만 있고 말도 없다.

해마다 조금씩 사라져가는 엄마를 만나면 슬프고 허망하다. 요양원은 정말 아닌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살수 있는 곳은 없을까.

영국 런던. 남편과 사별한 ‘이블린’은 노년에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빚을 갚기위해 아파트를 팔아야만 하는 이블린은 생활비가 싼 곳이 필요하다.

고등법원 판사인 ‘그램’은 은퇴를 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도로 돌아가려고 한다.

가정부로 평생을 일한 ‘뮤리엘’은 엉덩이뼈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사는 대기 기간이 짧고 수술비도 저렴한 인도를 추천한다. ‘진’과 ‘더글라스’부부는 애정없는 결혼 생활을 한것도 모자라 은퇴자금을 딸에게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 ‘매지’는 남편감을 찾는 중이다. 바람둥이 영감 ‘노만’은 여전히 여자들 뒤를 쫒는다.

살아온 삶과 각자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른 일곱명의 시니어들은 인터넷에서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최고의 이국적인 마리골드 호텔”이라는 광고에 현혹된다. 인도의 관광지 ‘자이푸르’에 위치한 호텔은 사진으로 본 정경도 멋지고 값도 싸다.

이들은 같은 날 인도에 온다. 호텔의 젊은 매니저 ‘써니’는 모처럼의 손님들을 열렬히 환영한다. 하지만 호텔은 낡고 음식은 맵고 자극적이다. 방에 문이 없거나 비둘기들이 날아다닌다.

일곱명의 투숙객은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블린은 콜센터에 일자리를 구하고 진은 독서를 한다. 진의 남편 더글라스는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다니고 뮤리엘은 솜씨좋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다. 매지와 노만은 클럽을 순회한다.

자금난에 부딪힌 호텔은 운영이 힘들다. 써니의 어머니는 호텔 사업을 정리하고

델리로 돌아와서 결혼하라고 성화이다. 하지만 써니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 준 호텔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 또 사랑하는 연인 ‘수내나’도 있다. 수내나는 ‘카스트’ 제도의 하층 계급 출신이다. 젊은 써니에게도 삶은 녹록치 않다.

순수한 성품의 이블린과 자상한 더글라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친해진다. 호탕한 매지는 외로운 노만에게 클럽에서 알게 된 영국 여자 ‘캐롤’을 소개한다. 노만과 캐롤은 금새 가까워진다. 그램의 비밀도 밝혀진다.

게이인 그램은 십대 때 사랑하던 연인을 두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를 잊지 못하고 후회와 그리움으로 살았다. 그램은 수소문 끝에 옛 연인을 만난다. 집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을 하고 평범하게 살던 연인도 평생 그램을 잊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을 확인한다. 그램은 심장마비로 평화롭게 생을 마친다. 멤버들은 가족처럼 그를 보낸다. 그램의 시신은 화장을 하고 재는 강물에 뿌려진다.

진은 의미없는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하고 홀로 런던으로 떠난다. 수술 후 회복기에 접어든 뮤리엘은 호텔의 재정 상태를 조사한다. 그녀는 자신의 은퇴 자금을 투자하고 호텔을 살리기로 결심한다. 써니는 어머니와 맞서고 수내나와의 결혼 승락을 받는다. 나머지 멤버들도 마리골드 호텔에 계속 남기로 결정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낯선 이국에서의 새로운 출발은 분명 굉장한 모험이다. 일곱명의 노인들은 살아 온 연륜만큼 주름진 얼굴과 흰 머리, 굼뜬 몸놀림인데도 용감하고 낙천적이고 우아하다. 불안하고 자신없어 하면서도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속 인도는 매력적이고 싱싱하다. 도시는 화려한 원색의 대비가 강렬하고, 인파 속을 비집고 다니는 자동차, 낙타, 코끼리, 자전거의 행렬로 살아있는 생명체같다. 오랜 전통과 급변하는 현대의 모습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유연하고 자유롭다. 유머와 풍자가 있는 따뜻한 영국 영화이다. 이국적인 음악, 아름다운 화면이 오랫동안 남는다.  타국의 호텔에서 노년을 보낸다니 근사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