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로마 (ROMA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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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우주에 홀로 남겨졌다가 지구로 돌아오는 고독한 여정을, 웅장하고 감동적으로 화면에 담은 ‘그래비티'(Gravity)는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 의 작품이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6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그의 놀라운 상상력과 대담한 스케일, 아름답고 유려한 화면은 독보적이다. 그가 자신의 조국 멕시코와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에 바치는  헌사와 같은 흑백 영화를 소개한다.  2018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올해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1970년, ‘멕시코 시티’의 교외 ‘콜로니아 로마’ 마을.

착하고 부지런한 ‘클레오’는 중산층 ‘안토니오’와 ‘소피아’부부 집에서 가정부로 일한다. 아침에 부부의 사남매를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청소와 빨래를 한다. 또 다른 가정부 ‘아델라’와 옥탑방에서 생활한다. 의사인 안토니오는 자주 출장을 가고 아이들은 시끄럽고 건강하게 잘 자란다. 소피아의 친정 어머니도 함께 산다. 쉬는 날, 클레오와 아델라는 애인과 데이트를 한다. 클레오의 애인 ‘페르민’은 무술에 심취해 있다. 둘은 모텔에서 사랑을 나눈다.

 안토니오가 또 출장을 가는데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아이들에게 학회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집을 나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소피아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안다.  임신을 한 클레오는 페르민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페르민은 자취를 감춘다. 겁이 난 클레오는 소피아에게 고백하고, 소피아는 클레오를 병원에서 진찰받게 한다. 연말에 소피아는 아이들과 클레오를 친척집 대농장에 데려간다. 아이들과 어른들, 하인들까지 모두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긴다. 토지때문에 소유주끼리 갈등이 끊이지 않던 시절, 한 밤중에 농장에 불이 나고 모든 사람들이 불을 끄느라 난리법석을 치면서 새해가 밝는다. 클레오와 아이들은 영화관에 갔다가 안토니오가 젊은 여자와 있는 것을 목격한다.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남편의 불륜을 숨겨왔다. 클레오는 용기를 내서 페르민을 찾아가지만 페르민은 클레오를 보고 화를 내고 뱃속의 아이도 부정한다.

 만삭이 다 된 클레오가 아기 침대를 사러 가게에 나간 날, 대학생들 시위가 벌어지고 경찰과 대치한다. 갑자기 무장한 시위대들이 도발을 하고 총격전이 일어난다. 가게 안으로 총을 든 무리가 들이닥쳐 사람들을 협박한다. 총을 든 남자가 페르민임을 확인 한 클레오는 양수가 터지고, 아수라장 속을 헤치고 병원에 도착하지만 죽은 아기를 낳는다. 클레오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괴로워 한다.

소피아는 남편이 타던 큰 차를 팔고 직장도 구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클레오와 바닷가로 여행을 간다.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떠난 것을 알리고 절망하는 아이들을 위로한다. 소피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둘째와 셋째가 파도에 휩쓸린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클레오는 바다에 뛰어들고, 간신히 아이들을 구해낸다. 클레오는 울면서 아기를 원치 않았었다고 고백한다. 소피아를 가장으로 한 식구들은 똘똘 뭉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클레오는 빨래를 널면서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어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흑백 화면이 마음을 적신다. 클레오를 보면서 어렸을 때 집안 일을 도왔던 착한 가정부 언니들이 생각났다. 순금, 정례, 복순, 옥이 언니. 우리  형제 들을 먹이고 씻기고 머리도 빗겨줬다. 70년초 도시풍경, 극장, 학교, 주택과 소품들까지 따뜻한 공감과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