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로봇과 프랭크 (Robot and Frank 2012)

1774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매년 엄마를 보러 한국에 나갑니다. 6년전 넘어져서 고관절 수술을 받은 엄마는 집에서 돌보기가 힘들어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여든 일곱인 엄마는 그 후부터 정신이 깜박깜박합니다. 모시고 살던 동생이 수시로 찾아가고 요양원에서 식사와 목욕 등 규칙적인 보살핌을 받지만 엄마의 기억은 모래알처럼 과거와 현재 사이를 슬금슬금 빠져나갑니다. 늙어서 혼자 되었을 때 곁에서 모든 필요를 척척 해결하고 건강 상태를 꼼꼼이 챙겨주며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도우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까운 미래. 전직 금고털이범 노인  ‘프랭크’는 뉴욕주 북부 전원 주택에서 혼자 삽니다. 아내와는 30년 전에 이혼했고 결혼한 아들 ‘헌터’는 차로 왕복 10시간이 넘는 곳에 살고 딸 ‘매디슨’은 늘 여행 중입니다. 프랭크는 왕년에 기막힌 손재주와 치밀한 계획으로 각종 방범 장치를 따돌리고 부잣집 금고 속 보석들을 훔쳤습니다. 감옥도 몇번 들락거렸지만 자식들은 잘 자랐고 늙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건장한 체격의 프랭크는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자꾸 잊어버리고 먹는 것도 대충 때워서 자식들을 걱정 시킵니다. 프랭크의 유일한 낙은 걸어서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는 일입니다. 도서관에 있는 종이책들은 대부분 두세번씩은 다 읽었습니다. 우아하고 친절한 도서관 사서  ‘제니퍼’를 속으로 좋아합니다. 제니퍼는 도서관의 유일한 인간 직원입니다. 대부분의 업무는 투박하게 생긴 로봇이 처리합니다.

주말마다 장거리를 운전해서 아버지 안부를 살피느라 지친 아들은 노인용 도우미 로봇을 선물합니다. 처음에는 왠 쇳덩이 가전 제품 이냐며 펄쩍 뛰던 프랭크는 빨래와 청소, 요리는 기본이고 매일의 시간표를 짜서 규칙적인 운동을 시키고, 프랭크를 위해 무공해 야채까지 재배하는 로봇에게 조금씩 마음을 엽니다.

마치 달나라 우주인 같은 희고 매끄러운 몸집에 헬멧을 쓴 로봇은 프랭크의 억지 소리에 즉각 말대답하고, 짜게 먹는다고 잔소리하고 어디든 함께 가며, 프랭크가 기억을 잃을 때마다 고쳐줍니다. 이제 로봇은 프랭크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도서관의 종이 책들을 전부 디지털 기기로  바꾸면서 대대적인 도서관 개축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그 책임자는 속물 부자 ‘제이크’입니다. 프랭크는 기금 모금 파티에 갔다가 제이크의 부인이 걸고 나온 값비싼 보석들을 보고 눈이 번쩍 뜨입니다.

프랭크는 제이크네 금고를 털기로 마음 먹습니다. 모처럼 삶의 활기를 되찾은 프랭크는 즐겁게 계획을 세우고 로봇에게는 치매를 예방한다고 둘러댑니다.  범죄와 오락의 구별을 모르는 로봇은 프랭크의 정신 건강을 위해 기꺼이 동참합니다. 열쇠 따기의 명수 로봇의 도움으로 프랭크는 보석 절도에 성공합니다. 제이크는 직감적으로 프랭크를 의심하고 경찰도 감시를 하지만  프랭크는 천연덕스럽게 건망증 심한 노인네 노릇을 잘도 합니다.

그러다 경찰이 시중드는 로봇의 기억 회로를 증거로 택하기로 결정합니다.

로봇은 자신의 기억이 프랭크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도 있으니, 기억 회로를 삭제하라고 요청합니다. 로봇에게 친구같은 의리와 정을 느끼는 프랭크는 주저합니다. 로봇은, 자신은 인간이 아니고 생명없는 물체라고 말합니다. 로봇의 존재 이유는 오직 프랭크의 안위 뿐입니다.  결국 프랭크는 로봇의 기억을 삭제하고, 용도를 다한 로봇은 창고로 보내집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프랭크는 이제 홀로 요양원에서 지냅니다. 아들과 딸, 그리고 잊혀졌던 아내 제니퍼가 프랭크를 가끔씩 방문합니다.

은퇴한 보석 절도범 노인이 인생 말년 치매의 문턱에서, 최첨단 휴머노이드 로봇 도우미와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과거가 아무리 화려한들 나이먹고 기억을 못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프랭크가 오래 전에 문닫은 단골 식당 앞에서 어제 여기서 점심을 먹었는데 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거나, 중년을 넘긴 아들에게 그래, 대학 생활은 어떠니 하고 묻는 장면에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영화 속 로봇은 프랭크의 정신이 흐트러질 때마다 차근차근 고쳐주고 안심시킵니다. 짜증내지 않고 프랭크의 얘기를 들어줍니다. 자식이나 배우자보다 낫습니다. 괴팍한 노인네와  원칙주의자 로봇이 주고받는 대화는 배꼽을 잡습니다. 로봇의 기억을 지우기 전 프랭크의 슬픈 얼굴과 작동을 멈춘 로봇이 프랭크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가슴이 저립니다. 재미있고 슬프고 웃기고 기발한 영화입니다. 보는 내내 요양원의 엄마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