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마르게리트와의 오후 (My Afternoons with Margueri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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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봄이 멀지 않다. 예전에 읽었던 고전이나 시집을 꺼내 소리내어 읽어보면 어떨까.

 프랑스의 한적한 지방 도시. ‘제르맹(제라르 드빠르디유)’은 공장에서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교육을 제대로 못받은 그는 온갖 잡일을 맡아한다. 우람한 체구에 50이  넘은 제르맹은 엄마가 홀로 키웠다. 엄마는 제르맹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늘 야단쳤고 학교 선생님도 바보 취급을 했다. 어렸을 때 받은 무시와 부정은 평생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가정도 꾸리지 않았다. 아들에게 여전히 모진 말을 하는 늙은 엄마를 돌보고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게 유일한 취미이다.

 제르맹은 자주 가는 공원의 벤치에서 책을 읽는 95살의 ‘마르게리트’를 만난다. 그녀는 유쾌하고 친근하게 제르맹을 대한다. 두 사람은 공원의 비둘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다가 마르게리트가 읽는 책으로 넘어간다. 제르맹은 아주 오래 전에 책을 포기했다. 마르게리트가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서 설명하자 제르맹은 처음으로 흥미를 느낀다.  마르게리트는 제르맹에게 책을 읽어 준다.  ‘까뮈’의 “페스트”를 읽는 동안에 제르맹의 타고난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깨어난다. 마르게리트는 제르맹의 놀라운 이해력과 감성을 발견하고 격려한다. 두 사람은 매일 오후 공원 벤치에서 만나 함께 책을 읽는다. 마르게리트는 자신이 곧 시력을 잃게 될것을 알려주면서 제르맹에게 책을 읽도록 권한다. 제르맹은 마르게리트가 준 책과 사전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그녀에게 책을 읽어준다. 제르맹의 삶이 서서히 변해간다. 동네 카페에서 자주 모이던 친구들은 제르맹의 달라진 생활 패턴과 늘어난 어휘력, 지적인 통찰력을 감당 못하고 쩔쩔맨다. 제르맹은 과거의 상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자존감도 회복한다.  그사이 엄마가 죽고 집을 남긴다. 제르맹은 엄마가 집을 물려주기 위해 그토록 절약하고 돈을 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아버지의 사진과 자신의 배내옷, 탯줄이 담긴 상자를 받고 자신이 사랑으로 태어난 것을 깨닫는다.

 사립 양로원에 머물던 마르게리트가 거동이 불편해지자 조카 부부는 그녀를 벨기에의 공립 시설로 보낸다. 이 사실을 안 제르맹은 친구의 밴을 빌려서 마르게리트를 찾아간다.  노인 환자들이 바글거리는 열악한 요양원, 제르맹은 휠체어에 외롭게 앉아있는 마르게리트를 발견하고 단숨에 그녀를  안아 밴에 태운다.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길, 햇살이 눈부시다.

 잔잔하고 섬세하고 따뜻한 영화다. 인생의 의미와 기쁨이 의외로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들 (공원의 비둘기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에게 책을 읽어주며, 사전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는)에  있다는 진리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잠자고있는 지성을 가진 무식하고 상냥한 제르맹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95세의 마르게리트는 주름 가득한 얼굴과 흰머리에도 우아하고 빛이 난다. 마을의 풍경은 다채로운 색깔과 밝은 햇빛으로 정겹고 포근하다. 제르맹과 친구들의 집결지인 카페 ‘프랑씬’은 여주인 프랑씬, 바람둥이 애인, 수줍은 동료, 허풍쟁이 친구들로 언제나 왁자지껄 시끄럽고 생동감 넘친다. 제르맹이 마르게리트를 구출하는 장면은 용감한 왕자가 곤경에 빠진 공주를 구해내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면 소리내어 책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