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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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내 의지와 본능에 충실하게 반응하고 따랐던 건장한 육체가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면  어떻게 할까. 삶이 단지 눈만 깜박거림으로 바뀌어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 엘(Elle)의 편집장, ‘쟝 도미니크 보비’.

마흔 셋에 세상을 자기 손 안에 쥐고 있다. 핸섬하고 재능있고 열정적인 그는 일과 여자를 사랑한다. 아들을 태우고 파리를 운전하던 중, 갑자기 뇌졸증이 오면서 정신을 잃는다.  이 날 이후로 ‘쟝 도(미니크’)의 삶은 송두리째 뿌리 뽑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영화는 3주간의 코마에서 깨어나는 쟝 도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처음 쟝 도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못한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 온 의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데,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 왼쪽 눈꺼풀의 깜박임을 제외하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꼼짝할 수 없다. 신경외과 의사,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들이 붙어서 쟝 도의 회복을 위해 애쓰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는다.

욕정과 미식과 일을 즐기게 했던 건강한 육체가, 이제는 자기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자신의 본질은 변함이 없고 정신은 분명히 살아있는데, 그것을 담아내는 몸은 전혀 구실을 못한다. 쟝 도가 느끼는 좌절과 분노, 두려움, 혼돈, 슬픔 같은 감정들이 쟝 도의 내면의 독백을 통해 들린다.

영화는 쟝 도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주변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의 눈을 통해 쟝 도가 되어서 사람과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며, 그의 감정의 변화에 공감한다.  언어치료사는 알파벳을 나열하여 쟝 도에게 의사 전달 코드를 만들어 준다. 왼쪽 눈꺼풀의 깜박거림으로 각 글자를 읽고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완성한다.

이렇게 쟝 도는 세상과 소통을 한다. 베이루트에서 4년 동안 인질로 잡혀 있었던 친구 ‘루쌩’의 방문 후, 쟝 도는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상냥한 ‘클로드’는, 쟝 도의 코드를 따라서 그가 말하는 내용을 받아 쓰면서,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섬세한 기억들에 감동한다. 하루 종일 수백 번씩 눈을 깜박거려서 겨우 한 페이지의 글이 써진다. 이렇게 해서 그의 책 “잠수종과 나비”가 완성된다. 한때 모든 영광과 쾌락의 본체였던 몸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잠수종(수중 탐험이나 공사를 위한 종 모양의 구조물)에 비유된다. 주인공은 그 안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의 내면의 의식은 나비처럼 자유롭게 꽃이 가득한 벌판을 날아다닌다.

쟝 도의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는, 인생의 정점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한 남자의 생존의 몸부림과  불굴의 정신을 가감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쟝 도의 문학적 재능과 풍부한 인격이 자신의 처지를 조금 떨어져서 관조하듯 바라보게 한다.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영혼이 거칠 것 없이 자유롭고 줄겁도록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쟝 도의 기억을 통해서 보여지는 과거의 장면들(해변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피크닉,  파리의 밤거리, 전성기때 모델들과의 화보 작업,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 음식을 먹는 것,  옛 애인 ‘쎌린’의 슬픈 얼굴등…)이 굉장히 멋지고 아름답다. 특히 잊지 못할 장면은 기능을 상실한 쟝 도의 오른 눈을 의사가 꿰매는 장면이다. 쟝 도의 눈이 서서히 닫히고 보이지않게 되었을 때, 마치 우리의 눈이 꿰메진 것 같은 답답함과 공포를 느낀다.

쟝 도가 아흔 두 살의 아버지에게 면도를 해주면서 부자간의 정을 나누는 장면도 좋다. 자꾸 잊어버리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쟝 도는 책이 출간되고 사흘 후에 마흔 다섯의 나이로 죽는다. 쟝 도의 고백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은, 어떤 경우에도 꺽이지 않는 내면의 정신에 있음을 실감한다. 나비같이 자유로운 영혼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2007년 칸 영화제 감독상,  2008년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