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참을 수없는 유혹의 가벼움 : Chocolat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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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 영화칼럼니스트

 

드디어 5월. 왠지 달콤한 것이 먹고 싶고 마법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계절. 다크 초콜릿 같은 영화를 소개한다.

오래지 않은 옛날,  프랑스의 한적한 어느 시골. 전통을 중시하는 마을 사람들이 조용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고있다. 시장인 ‘레이노’ 백작은 조상 대대로 마을을 다스려 온 부와 권위로 주민들의 생활 전반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북풍이 부는 겨울 날, 고여있는 물같이 침체된 마을에 붉은 망또를 걸친 이방인 모녀가 나타난다. 아름답고 신비한 여인 ‘비안느’(줄리엣 비노쉬)는 딸과 함께 광장의 빈 건물을 세내어 초콜릿 가게를 연다. 정성스런 준비 끝에 가게의 진열장에는 매끄럽고 이국적인 형태의 초콜릿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고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사순절을 앞두고 마을 사람들은 단것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시장은 마을 사람들의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주일 미사때 젊은 신부의 강론 원고도 직접 쓸 정도로 독선적이다.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나타나서 초콜릿과 케익으로 주민들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비안느가 불편하고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비안느는 주민들의 호기심과 경계의 눈초리에도 상냥한 미소와 초콜릿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어 간다. 괴팍하고 신랄한 말투의 집주인 노파 ’아망드’는 비안느의 특제 코코아에  매료되어 외동딸에게 절연당한 사연을 털어 놓는다. 독신 할아버지는 비안느의 격려에 용기를 내서 평생 사모한 과부 할머니에게 초콜릿 상자를 선물하면서 애정을 고백한다. 폭력 남편에게 맞으며 불행하게 살던 마을의 왕따 ‘죠세핀’은 비안느의 초콜릿에 힘을 얻어 남편에게서 벗어난다. 비안느는 빈 손으로 집을 나온 죠세핀을 거두어 들이고 초콜릿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

시장의 비서로 일하는 아망드의 딸 ‘카롤린’은 남편이 죽고 혼자서 아들을 키운다.

아내가 자신을 떠났음에도 사람들에게는 여행 갔다고 둘러대며 체면을 지키려는 레이노 시장과 하나뿐인 아들에게 인생을 걸고 모든 걸 간섭하는 카롤린은 삶의 향기를  잃어버린 외로운 영혼들이다.

죠세핀까지 합세한 비안느의 가게는 이제 마을의 쉼터가 되고 사람들은 초콜릿과 코코아의 황홀한 맛에 즐거워한다. 레이노 시장은 자신의 권위에 기죽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비안느가 계속 거슬린다.

어느 날 한무리의 집시들이 배를 타고 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고 강 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집시를 경멸하는 시장은 공문을 통해 그들을 철저히 보이콧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온 마을 사람들의 냉대에 물 한잔도 얻을 수 없던 집시의 리더 ‘루’(쟈니 뎁)는 자기들을 편견없이 받아주는 비안느의 따뜻함에 감동한다. 시장은 그녀의 가게에  금족령을 내린다.

아망드의 생일,  비안느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한다. 아망드는 손주로부터 초상화 선물을 받고 기뻐한다. 비안느는 식사 후의 파티를 일부러 루의 배에서 열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그날 밤 앙심을 품은 죠세핀의 남편이 배에 불을 지르고, 아망드는 최고의 생일을 보내고 행복하게 숨을 거둔다. 루가 집시들과 떠나고, 아망드의 장례가 끝나자 비안느도 짐을 싼다. 죠세핀은 비안느를 붙잡기 위해 그동안 배운 솜씨로 온갖 초콜릿을 만든다. 죠세핀의 열정에 다시 마을에 남기로 한 비안느는 페스티발에 내놓을 초콜릿 작품들을 만들어 진열장에 장식한다. 페스티발 전날 밤, 시장은 몰래 진열장의 초콜릿들을 부숴 버린다. 그러다 초콜릿 한 조각이 그의 입으로 들어간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혀끝에 퍼지고 시장은 미친듯이 초콜릿을 먹다가 그대로 잠이 든다. 다음 날 세상이 바뀐다. 사람들은 비안느의 초콜릿을 마음껏 즐기게 되고 시장은 자신을 옭아맸던 위선과 권위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겸손하고 온화해진 시장은 진정으로 자신의 오랜 비서인 카롤린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매력적이고 엉뚱하며 느긋하고 달콤한 영화이다. 영화 속 마을은 정겹고 아기자기하며 동화책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특히 비안느가 초콜릿을 만드는 장면들은 섬세하고 감탄스럽다. 온갖 모양과 치명적인 색깔의 초콜릿을 보면 먹고 싶은 유혹을 참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을 죄로 취급하고, 자기가 속한 집단과 다르면 배척하는 왜곡된 신앙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은  상처받고 불행하다. 영화 말미, 시장에게 조종당하던 젊은 신부가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로 펼친 강론은 짧지만 신앙의 핵심이 들어있다.

“오늘 저는 주님의 신성(神性) 보다는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말하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한없는 친절과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유혹을 물리쳤다거나 또는 (종교와 생활이 다른) 이방인들을 외면하는 것으로 우리의 선함을 증명해서는 안됩니다. 그보다는 주신 재능을 발휘하고 삶의 모든 걸 껴안고 즐기며,우리와 다른 이웃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