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처음 CPE(Cilnical Pastoral Education) 인턴 수업을 시작하고 받은 수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당신의 목회적 돌봄의 신학적 이미지(The Image of theology of pastoral care)는 무엇인가?’였다. 질문의 요지는 어떠한 신학을 가지고 목회적 돌봄 즉 채플린의 역할을 할 것인가? 그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을 다해 경청과 공감을 해주고,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나의 경험을 나누며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다. 마무리는 온 정성을 다해 침 튀겨가며 기도해 주는 것이라 믿었다. 나는 ‘손을 잡아주는 이미지’를 골랐다.  성경의 근거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 15)에서 찾았다.

환자를 방문해서 목회적 돌봄의 이미지대로 했을 때 느낌은 채플린으로의 존재감, 성취감 그리고 행복감이었다.  반면 노숙자나 우울증 환자, 알콜 중독 환자, 약물 중독 환자, 아니면 병든 부모나 가족을 돌보다 지친 보호자들이 희망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 도울지 몰랐다. 그러고 나면 때는 뭔가 부족하고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에 절망했다.  즉 내가 잘했다고 느끼면 행복 했고, 그렇지 못했다고 느낄 때는 우울해졌다. 그런데 이것이 커다란 착각이었다. 배워갈수록 채플린으로서의 목회적 돌봄의 신학적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잘못이라기 보다는 채플린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목회나 상담자의 역할로서는 맞을 수도 있지만, 채플린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이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내가 생각한 관점과 경험으로 환자를 대한다면, 그것은 나 중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채플린은 자기 중심적이 아닌 환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환자를 방문하고 대해야 한다. 채플린은 환자에게 뭔가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깊이 있는 이야기나 환자의 느낌을 표현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환자가 원하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더 제공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누구의 필요인가(Who’s Need)?”이다. 환자의 삶의 배경이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비슷한 경험을 했어도 그것이 환자의 경험과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41세에 초산인 산모 가족의 기도요청이 있어 방문 했다. 임신23주 정도 되었는데 태아의 크기가 작아 입원했다. 의사는 환자에게 ‘안정을 취하고, 출산해도 태아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수  있으니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서 불안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를 해주었다. 그뒤 환자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내 핸드폰에 복음송이 있는데 듣기를 원하면 들려주겠다고 했다. 환자와 가족들은 좋다고 했고, 그들이 좋아할만한 복음송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만족해 했고, 고맙다는 말과 표현으로 그들은 포옹까지 해주었다.  그뒤 수업시간에 이 환자의 방문록(Verbatim)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게 되었는데, 엄청 지적질 당했다. 누구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냐고…기도 후 환자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했으면, 나는 거기에서 멈추고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채플린이 된다는 것이 쉽지는 않구나”

병원에서 이 글을 쓰다가, 간호사에게 연락이 와서 응급실에 다녀왔다. 59세된 남자가 심장 발작으로 엠블란스에 실려왔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은 깨어나지 못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기도했지만, 축 늘어진 팔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숨이 멈춘 환자의 얼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이생에 아쉬움이 남았는지 두눈은 감지 않았다. 나는  뜻 모를 기도를 올린 후 그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뒤늦게 도착한 80세 넘은 노모가 죽은 아들 이마에 키스를 하며 “My Baby”라 부르며 절규했다. 10년 전에 다른 아들도 죽었다 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이나 종교적인 행위가 위안이 될까?  그저 슬퍼하는 노모의 손을 잡아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죽음 앞에 삶이 더욱 진지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