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뜸들이다 ‘골든타임’ 놓쳐···팬데믹으로 가는 우한 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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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설인 춘제를 맞아 23일 한 청년이 상하이에서 우한으로 향하고 있다. 24일부터 본격적인 연휴가 시작되는데도 예년과 달리 열차 안은 텅텅 비어 썰렁하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뒤늦게 이날부터 우한의 모든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하고 우한에서 외부로 나가는 공항과 기차역을 폐쇄하는 등 도시 전체를 사실상 외부와 단절하는 봉쇄령을 내렸다.[AFP 연합]

우한 공항 하루 이용객 3000명 넘어 전세계로 바이러스 전파한 셈
19일엔 4만명 모인 신년행사 강행···“늑장대응 고질적 병폐 도졌다”

중국 당국이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지인 우한(武漢)을 뒤늦게 봉쇄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확진자가 나올 만큼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황이다. 미적대고 숨기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중국의 고질적인 병폐가 도졌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번 차단 조치는 우한 폐렴이 사람 간 전염을 넘어 지역 사회와 도시 전체에 퍼졌다는 의미다. 감염자를 찾아내 격리하는 것만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사람 간 전염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마지못해 인정했던 우한 보건 당국이 일주일여 만에 백기를 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늑장 대응으로 화를 자초했다. 중국 전염병방지법 43조는 ‘현(县)급 이상 지방정부는 상급 정부에 보고해 전염병유행지역을 선포하고 인원과 물자, 교통수단에 대한 위생검역과 폐쇄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저우센왕(周先旺) 우한 시장은 19일 시민 4만명이 모인 신년 맞이 행사를 강행하면서 “사람 간 전파는 제한적이고 참여인원은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후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湖北)성에서만 확진 환자가 19일 198명, 20일 270명으로 급속히 불어나 감염 확산을 부추긴 셈이 됐다. 우한 공항 이용객이 하루 평균 3,300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방역망이 뚫린 우한은 중국 전역과 전 세계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숙주나 다름 없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일 긴급 지시를 통해 “폐렴 확산을 단호하게 억제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21일 우한 폐렴의 전염병 등급을 ‘을’로 지정하면서 대응조치는 최고 수위인 ‘갑’류에 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을류 전염병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보다 증상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하면 갑류에 속하는 흑사병에 맞먹는 강력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틀간 버티다가 춘제(春節ㆍ설) 연휴가 본격 시작되는 24일을 하루 앞두고서야 부랴부랴 도시를 봉쇄했다. 말에 걸맞은 행동이 늦었던 셈이다. 전날 국가위생위는 “불안감을 조장한다”며 기자회견 참석자들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했지만, 우한시 방송에는 이날 마스크를 쓴 아나운서가 등장하며 달라진 위기감을 드러냈다.

중국이 봉쇄 조치에 뜸을 들인 이면에는 우한의 상징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한은 2006년 본궤도에 오른 중부개발의 거점이자 시 주석의 역점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의 교두보이다. 이에 지난해 4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을 우한에서 열었고, 9월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곳으로 초청했다. 이어 10월에는 세계군인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이처럼 한창 각광받는 도시를 전염병의 온상으로 낙인 찍는데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일보는 23일 “이번 사태 이후 중국은 엄밀한 예방과 통제조치를 취했고, 폐렴 예방과 치료 관련 정보를 제때 발표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 관련국과 상황을 공유했다”는 시 주석의 발언을 전했다. 반면 CNN은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 “중국 정부의 정보 공개 투명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02년 11월 사스가 광둥(廣東)성에서 발병했지만 중국 정부는 5개월 뒤인 2003년 4월에야 이를 공식 발표하면서 전세계 37개국, 8,000여명이 감염돼 7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폐렴 확산을 막으려는 당국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며 불안감을 달래는데 주력했다. 환구시보는 “우한 같은 성도(省都)급 대도시가 폐쇄된 건 신중국 건국 이후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갑작스런 조치는 아니고 최근 며칠 새 폐렴 환자가 급증하면서 이미 예견된 수위의 대응”이라고 평가했다.<베이징=김광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