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앙숙’ 화해시킨 중국…“바이든 뺨 때린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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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이란 7년 만에 외교정상화…중, 중재부터 합의까지 상당 입김

중동의 오랜 앙숙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공식 화해와 함께 외교 관계를 재개하면서 중국의 ‘국제무대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사우디아라비아)과 시아파의 본산(이란)인 두 나라가 7년간의 갈등을 접도록 만든 ‘최종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미국의 대(對)중동 영향력이 줄어드는 사이, 중국이 재빠르게 그 공백을 채우며 치고 들어간 것이다.

미국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중동 외교전에서 급등한 중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면서 “우리는 여전히 중동에서 건재하다”고 거듭 강조할 뿐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조차 ‘미국의 완패’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전날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양국 외교 사령탑 간 회동을 마친 뒤 “두 나라는 2016년 이후 중단된 외교관계를 재개하고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항하던 무장단체에 대한 지원을 줄이겠다”는 약속도 했다. ‘우회 공격’을 위해 활용했던 예멘 반군 등과의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취지다.

양국의 화해는 중동 내 역학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우선 미국·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 그리고 중국·러시아와 이란 등 시아파 국가로 나뉘었던 대치 전선의 경계가 모호해질 공산이 크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부쩍 사이가 멀어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를 고려하면, 중동의 동맹 구조마저 큰 폭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 경우, 중국의 ‘입김’이 상당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번 화해를 위해 중재국을 자처했고, 최종 협상도 도출해 냈다. 실제로 합의문 도출 직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지원해 준 중국 지도부와 정부에 감사하다”는 별도 공동성명도 냈다.

단순히 장소만 제공한 것도 아니다. 이란 국영매체 이르나통신은 “지난달 베이징에 초청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대화를 통해 최종 합의안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중재부터 최종안 도출까지, 중국이 상당한 공을 들이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얘기다.

중동에서 입지를 넓히려는 중국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은 ‘화석연료 의존도 줄이기’에 나선 미국의 정책 변화로, 2021년 이후 중동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됐다. 이뿐이 아니라 최근 들어선 △이란 차바하르 항구 △오만 두캄 산업단지 등 현지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도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동 국가들도 중국의 진출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NYT는 “중동 국가들은 (미국과 달리) 독재에 간섭하지 않는 중국이 앞으로도 인권 유린 등을 모른 척해 주면서 자신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이 같은 중국의 활약이 못마땅한 모습이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전날 중동 외교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미국이 중동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이번 합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향한) 대내외의 압력 때문이지, 중국의 적극적 역할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역할이 과대포장됐다면서 폄하하려 애쓴 것이다.

하지만 미 외교가는 바이든 정부의 중동 외교 정책이 위기를 맞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애런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WSJ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의 관계는 훈훈해지고 있는 반면,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라며 “사실상 이번 협상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바이든 대통령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