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결집’vs‘세 키운 중도의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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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버니 샌더스, 피트 부티지지, 에이미 클로부차 후보.[AP]

■ 민주 대선 파이싸움 점화
샌더스-부티지지, 신 양강 대결···확장성 고민
중도 구심점 없이 분열 계속되면 샌더스 유리

민주당의 뉴햄프셔 경선을 계기로 ‘트럼프 대항마’를 가리기 위한 당내 진보 대 중도 진영 간 ‘파이 싸움’이 본격 점화한 모양새이다.
대선 레이스의 첫 테이프를 끊은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함께 대선 풍향계로 꼽히는 이번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의 결과는 이념 스펙트럼 측면에서 진보의 결집, 그리고 그에 맞선 중도의 건재 확인 및 내부 분화로 요약된다.
이에 따라 양 진영이 남은 경선 기간 어떤 식으로 ‘헤쳐모여’ 하느냐 역시 승자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는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무당파 표심의 향배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본선 경쟁력과 확장성을 둘러싸고 민주당을 떠받치는 진보와 중도 양날개간 신경전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의 아이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뉴햄프셔 승리로 ‘부티지지 돌풍’을 한풀 잠재우는 동시에 당초 ‘양강’으로 여겨졌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초반부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이로써 샌더스가 전국적 선두주자의 입지를 강화했다고 CNN방송이 12일 보도했다.
무엇보다 그는 진보진영 대표주자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샌더스 상원의원이 뉴햄프셔 승리로 당내 좌파를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CNN이 보도한 98% 개표 결과를 기준으로 샌더스 상원의원의 득표율은 25.8%로 한때 상승세를 보이다 이번에 4위로 주저앉은 같은 진보 진영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9.3%)을 압도했다.
당내 진보 블록이 샌더스 상원의원에 표를 몰아주면서 그의 깃발 아래 결집한 셈이다. 그러나 선명성을 내세운 진보 진영에 가려 세가 밀리는 듯했던 중도 진영도 건재를 과시했다.
‘아이오와 대이변’으로 중도 진영 내 유력주자로 일약 부상한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24.5%)과 이번에 ‘깜짝 3위’ 도약이라는 이변을 연출한 에이미 클로부차 상원의원(19.8%), 5위로 몰락하며 대세론 자체가 무색해진 조 바이든 전 부통령(8.4%) 등 중도성향 주자들의 득표율을 합하면 52.7%로 과반이었다.
이는 진보 블록의 샌더스, 워런 상원의원의 득표율 합계인 35.1%를 크게 앞서는 수치이다. 결국 중원을 잡지 못하고서는 본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대선 공식’과 맥이 닿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뉴햄프셔 경선 결과를 놓고 “민주당이 보다 긴 싸움 없이 ‘사회주의자’에게 쉽사리 후보 자리를 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며 부티지지, 클로버샤 등 중도주자의 선전은 당내 중도 날개가 사라졌다는 통념이 잘못됐음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진보 진영이 샌더스 상원의원을 대표주자로 밀어주는 쪽으로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한 듯한 흐름이지만, 중도 진영은 아직 내세울 ‘간판’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혼돈에 휩싸인 모습이다. 중도진영 내 지각변동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면서 중도표가 아직 어느 한쪽으로 확 쏠리지 못한 채 분산 내지 분화도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이는 중도 진영의 구심점을 자임했던 바이든 전 부통령의 속절없는 급전직하로 진공 상태가 초래된 가운데 유권자들이 아직 관망세에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여기에 초반전 4곳을 건너뛰고 3월3일 수퍼 화요일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지지층이 겹치는 바이든 전 부시장의 틈새를 파고들며 가세, 중원 고지를 둘러싼 경쟁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샌더스의 승리는 민주당의 중도 날개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진보 진영의 챔피언으로서 저력을 보여준 자리였다면서도 샌더스의 부상은 민주당이 트럼프 격퇴라는 강렬한 욕구로 똘똘 뭉쳐있는 상황에서 당내 중도파와 전통적 진보 인사들을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경선 초반전에서 ‘신 양강’을 구축한 진보의 샌더스 상원의원과 중도의 부티지지 전 시장 모두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확장력 등의 면에서 당 주류 입장에서 100% 흡족한 카드는 아니다. 결은 다르지만 둘 다 ‘마이웨이 스타일’인 셈이다.
이와 관련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샌더스-부티지지’ 구도를 ‘불청객’과 ‘새치기’의 대결에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샌더스 상원의원은 불청객이다. 설득하거나 안심시키는 방법이라 아니라 정면으로 충돌하는 방법만이 민주당 내 기득권 등에 받아들여질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아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부티지지 전 시장은 새치기다. 기득권과 전혀 충돌하지 않는 와중에 다만 자기 차례까지 기다릴 생각도 없고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조언에도 귀 기울일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2008년의 버락 오바마 후보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최근 30년 새 미국 대선에서는 불청객과 새치기의 등장이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이렇게 불청객과 새치기가 서로 맞붙는 현상은 처음이라는 게 폴리티코의 분석이다. 결국 중도 진영 내에서 ‘확실한 강자’가 조기에 드러나느냐 여부가 경선의 향배를 가를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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