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규만 교수의 심리학 세계] 화병에 대한 이해와 대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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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규만/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상담 심리학과 석좌교수

심리 상담을 하다 보면 대체로 나이 드신 여성 어르신들이 화병을 많이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분들은 “가만히 혼자 있으면 가슴에서 불덩어리기가 올라오고 힘들어서 잠을 못 자고 소화도 안 되고 혈압도 오른다”라고 하소연한다. 화병(火病)을 다른 말로 하면 ‘울화병(鬱火病)’, ‘심화병(心火病)’, ‘속병’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화병은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여 신체적인 통증, 가슴이 답답함, 불면증 등의 증세로 표현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증상은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존재하는 문화적인 현상의 고유 장애로 알려져 있고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출판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권위 서적인 DSM-Ⅳ(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서는 한국의 문화에 관련된 특유한 질환으로 이를 hwa-byung(화병)이라는 한국식으로 표기로 한 적이 있으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진단기준인 DSM-5에서는 이를 삭제하였다. 즉 현재는 정식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다.

화병은 학계의 입장은 정서장애 중에서 신체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키는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화병이라는 완전히 별개의 정신질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그냥 우울증의 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즉 화병의 증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울증의 증상과 유사다. 화병에 관련된 우울, 불안, 분노, 짜증, 무력감, 불면을 포함하여 가슴 통증, 소화불량, 속쓰림, 이명, 피로, 근육통 등의 신체 증상도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만약 분명한 외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없이 억압된 사회 및 가정환경에서 이런 증상들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화병을 의심해 볼 수 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물론 신체 건강, 학업 및 업무, 대인관계에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화병발명의 현대적인 요인은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분란의 소지가 있을 만한 발언들을 되도록 억압하고 쉬쉬하는 경향 때문에, 부당하고 억울한 감정을 억누르면서 혼자서 대처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주원인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사회에서는 대체로 개인 자신의 분노나 답답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고 억지로 참도록 교육을 받았기에 억압된 분노의 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내면적 및 심적(心的) 질환으로 신체화되는 것이 오늘날의 화병이라고 할 수 있다.

▪ 화병에 취약한 사람의 특징

1)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수용하는 여성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시집을 가면 3불(不)의 원칙을 강조했다. 즉 시집에서 가서 눈으로 못 볼 것을 보면 못 본 척하고, 시집의 수치스럽고 부당한 가정사 이야기를 들어도 안 들은 척하고’, 이것을 외부로 말하지 말고 속으로 간직하라고 강조하면서 여성은 남편의 시집 문화에 적응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현상을 현대적으로 접근하면 결혼 생활에서 불편하고 부당하고 힘든 것 때문에 생기는 우울, 불안, 분노 또는 실망의 감정을 직면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참고 억압하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억압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신체화해서 표현되는 것이 화병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전통적인 유교 가정에서는 여필종부(女必從夫) 즉 여자는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규정되어 있고, 여자는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능력이 없다고 여기면서 남편의 의견에 복종하기를 강요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했거나, 또는 이러한 전통적인 가정에 시집을 온 여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제시하면 남편이나 웃어른에게 반항하고 볼 복종한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정당한 여성의 의견을 무시하고 통제했다. 이렇게 되면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상실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러한 억울한 감정이 쌓이면 화병이 된다.

2) 현모양처형의 여성

우리는 주위에서 여성이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은 뒷전에 두고 아내로서 남편의 뒷바라지를 잘하고,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는 어머니를 현모양처라고 하면서 이러한 여성을 치하하고 심지어는 공덕비도 세워주어서 여성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사회적으로 조장하기도 해왔다. 그러나 현모양처형의 여성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은 남들에게 잘해 주어도 받는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다른 행동으로 보답하기는 커녕 고맙다는 말도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서운해 하면서 속앓이하고 울화병을 경험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타인 위주로 산 여성들은 내면에 서운함, 배려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배신감 등의 감정이 오랜 시간 쌓이면 이러한 감정이 신체화되어서 화병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3) 모범생형의 사람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선한 일을 알아서 하고 주위에서 착한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을 우리는 모범생이라고 부르고 흔히 “범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범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범생 신드롬이 있다.

– 주위 사람들을 알아서 많이 도와주고 착한 행동하기

–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민감하고 칭찬받기를 좋아하기

– 남들이 요구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면서 스트레스 받기

– 남의 일이라면 우선순위를 두고 해결해 주지만, 자신이나 가정의 일은 미루거나 소홀히 하기

– 항상 남을 의식하고 기쁨조처럼 살아가기

이러한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기쁜 표정을 짓지만, 혼자 있으면 내면으로는 남들에 대한 거절감,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불안하고 우울하다. 심신이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면서 힘들어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기보다는 타인 위주로 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후회하고 힘들어하면서 이러한 억압된 감정이 신체화해서 소화도 잘 안 되고 수면 장애 등의 화병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4) 문제를 지나치게 내현화하는 사람

우리는 문제가 있으면 문제의 원인을 외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상황을 탓하고, 주위 탓하는 사람을 본다. 이러한 사람을 외현화하는 성향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자신의 탓을 하면서 “내 탓이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을 내현화 하는 사람이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차리는 면에서 외적인 원인과 내적인 원인을 균형 있게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를 과도하게 비현실적으로 “자신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화병에 취약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을 심리적으로 스스로 학대하는 사람들이고, 이러한 감정이 쌓이면 우울하고, 신체화된 화병의 증상을 보인다. (다음 주: 화병에 대한 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