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는 탈북민의 미국 메모리얼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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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의 광활한 대지가 온통 초록색의 짙은 향기를 내며 여름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이제 6월이
되며 완연한 초여름 날씨를 보인다. 지난 29일은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였다. 한국말로는 현충일에
해당하는데 찬란하게 밝은 여름날씨속에서 많은 미국인들과 한국 교민 그리고 탈북민들이 즐거운
하루의 공휴일을 보내었다. 지난 1971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5월의
마지막 월요일로 정하고 다른 공휴일과 마찬가지로 연방 공휴일로 공표하면서 미국의 현충일 메모리얼
데이는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모든 도시들은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과거 미국이 참전한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과 미국을 위하여 봉사하다 사망한 모든 사람들을 추모한다. 오늘 이야기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느끼는 탈북민 잭 김씨의 이야기이다.
어릴때 탈북을 하여 오랫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며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와 같은 현충일을 여러번
보아왔던 김씨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가 한국보다 훨씬 성대하게 기념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
중서부에 거주하는 김씨는 미국에서 처음 맞는 메모리얼 데이가 매우 인상 깊다고 말한다. 미국
메모리얼 데이는 연방 공휴일이기 때문에 약 4천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연휴를 즐기러 여행을 가기도
한다. 실제로 도로 정체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공항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비루스 사태가 끝나면서 미 역사상 3번째로 많은 미국인들이 여행을 했다.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들은
집에서 연휴를 끼고서 휴식을 취하기 한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맞는 메모리얼 데이에 큰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잭 김씨는 주변의 한인교포들과 미국사람들에게 메로리얼 데이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던지고 물어보았다.
잭 김씨가 오랫동안 미국생활을 해왔던 한국 교민들에게 설명을 들었던 메모리얼 데이는 단순히
군인들만 하는 날이 아니었다. 이 날은 개인적인 의미에서 추모하는 날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이나 개인은 모두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추모하는 행사를 한다는것을 알았다. 이 날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에 참석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찾아가 꽃을 놓아
두거나 조용히 추모하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맞이하는 날이다. 김씨는 TV를 통해서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화환을 헌화하고 추모 행사의 일환으로서 의장대는 공중에 예포를 쏘는것을
보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메모리얼 데이 기념식에서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는 우리의 힘이자 가능성의 원천"이라며 "역사의
기록을 통해 우리 군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늘날 우리 군인들 및 가족들의 봉사와 희생은 저 침묵의 돌들
너머에서 울려 퍼진다면서 "우리는 그것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불길 속에서 영원히 맺은 유대로부터
구축한 동맹의 힘으로 본다”는 말을 들으며 왠지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사실상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북한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북한에서 부모님들이 일생을 보내시다가 탈북하여
한국에 정착하여 사셨지만, 이미 잭김 씨는 한국사람이 되어 있는것 같다고 스스로를 말한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기에 오히려 미국인들의 희생에 감사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미국에서 메모리얼 데이를 맞은 탈북민 잭 김씨는 북한과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떠나 매우 좋은
느낌음 받았다고 말한다. 탈북민 잭김씨의 말처럼 하루 빨리 북한과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가 청산되고
좋은 사이와 관계가 되어서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한미자유연맹 부총재 김성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