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난한 과부 뒤에 숨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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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누가복음 20-21장을 보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통은 과부가 자신의 전재산인 두 렙돈(한 끼 식사 비용)을 헌금으로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주제로 설교를 듣게 되고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본문을 잘 읽어 보면, 주제는 헌금이 아니라 심판이다. 그럼 누가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인가? 가난한 과부처럼 다 드리지 못하는 신자들이나 그런 주제로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인가? 아니다. 누가복음 20장 46절에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에수님께서는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47절)고 지적하신다.

우리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드리는 전적인 헌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 뒤에 숨겨진 예수님의 진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마저 착취하고 이용하여 자신들의 외식적인 종교심을 채우고자 하는 타락하고 썩어 버린 교회 지도자들이다. 예수님은 곧 가난한 과부를 통해 타락한 서기관과 그에 준하는 썩어 빠진 종교지도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가 모든 재산을 털어서 두 렙돈을 봉헌하는 마음은 가히 아름답고 헌신적이며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주제로 삼아 설교가들이 성도들에게 “다 바치면 복 받고천국간다”는 종교적 아편을 팔아서는 안 된다. 도리어 교회 지도자들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 속에서 진실에 대한 질문을 끄집어 내야 한다. “왜 가난한 과부가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어 놓아 하나님께 헌금하려고 하려고 하는가?”

아마도 과부는 두 렙돈을 드리면서 진실했을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물질이 부족해 적은 것을 드리지만, 전부를 드립니다. 복 주시고 수 십 배 또는 수 백 배로 갚아 주십시오.’ 과부의 겉 모습만 보면, 그녀는 매우 기복주의적이고 하나님을 물질의 신과 돈의 우상으로만 생각하는 잘못된 신앙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표피만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 메시지의 내면과 숨겨진 비밀을 보아야 한다. 바로 과부 뒤에 숨은 진짜 심판 받을 자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로 기복주의와 번영신앙의 가르침으로 순수한 신앙심을 뒤틀어 버리고 간절한 믿음을 속되고 탐욕스럽게 만든 과부 뒤에 숨은, 곧 서기관들과 유대의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신학자는 “절박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과부는 쉽게 탐욕적인 종교 지도자의 먹잇감이 된다”고 말하면서, “탐욕의 물든 타락한 지도자들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과부는 더 가난해 지고 종교 지도자는 더 부유해져 갔을 것”이라는 설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하나님께 드린 이야기는 가난한 성도들이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지위, 지식, 권력으로든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경고인 것이다. 목회자는 잘못된 성경해석과 태만한 성경연구로 성도들을 우매하게 만들어 성전을 종교 비지니스하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성도들도 탐욕이 가득한 설교에 “아멘”을 외치고 성공과 승리 이데올로기의 물신(物神)에 대한 선포에 “할렐루야”를 부른다면 교회는 지옥의 방주가 될 것이다.

사순절의 삶 속에 항상 십자가 뒤에 숨은 우리를 본다. 예수의 십자가와 보혈을 팔아 먹고 우리는 거짓의 금식 영성과 외식된 절제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십자가에 직접 짊어지지 않는다면, 사순절은 결코 의미가 없다. 가난한 과부 뒤에 숨은 자들이여, 나오라. 십자가와 예수의 고난 뒤에 숨은 그리스도인들이여, 나오라. 진실하고 투명한 곳에 천국이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