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믿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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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믿음이 생기면 성경 말씀을 믿는다. 즉 성경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가장 기초적이지만 많은 현대 기독교인이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이점이다. 믿음은 자기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으로서 무엇 무엇이 이루어질 줄로 절실히 믿으면 그렇게 된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이런 믿음을 구원받는 믿음, 성경이 말하는 믿음으로 여기는데 이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참된 진리로 믿는 것이다.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을 받을 때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경험하게 되고 그 권위로 인해서 성경 말씀을 참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믿음은 반드시 어떤 권위와 관련을 맺는다. 권위 때문에 믿게 된다. 그 권위가 논리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자기 아버지의 신실함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어떤 권위가 있나? 하나님의 권위가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경험하게 되고 이 권위에 의해서 성경 말씀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까지는 지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참믿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구원파의 믿음은 여기에서 끝난다. 아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개혁주의 믿음은 지적인 것 이상이다. 참믿음은 성경 말씀의 각 구절에 있는 내용에 따라 행동하되 명령의 말씀에는 순종하고 경고의 말씀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금세와 내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말씀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믿음은 행위로 연결된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요구하는 다양한 종류의 말씀이 있다. 먼저 명령하는 말씀이 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 이것 모두 명령하는 말씀이다. 참믿음이 있는 자는 이 말씀대로 순종한다.

그러나 모든 성경 말씀이 명령으로만 되어 있지 않다. 경고의 말씀이 있다.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너 자신을 믿으면 파멸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을 받으면 참다운 믿음이 있는 자는 두려워 떤다. 요즘은 뭐든지 긍정적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보니,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참다운 믿음인 것처럼 왜곡된다. 잘못된 태도이다. 참다운 신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도 느껴야 한다.

성경에는 또한 약속의 말씀도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올 것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겠다. 이런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믿음을 요구한다. 그렇게 이루어질 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정의 중에서 지적이고 정적인 영역의 믿음이다.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이다. 믿음은 은혜 언약에 근거하여 칭의와 성화와 영생을 위하여 그리스도만을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의존하는 것이다. 어떤 생명체이든지 생명을 유지해 주는 핵심이 있다. 거대한 나무라도 맨 처음 시작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부터 출발한다. 씨앗이 없으면 나무도 없다. 반대로 씨앗은 나무를 위해서 존재한다.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창세기 3장에서 언급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 그것의 그림자 역할을 한 구약의 제사, 실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죄인을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그리스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 성경의 그 핵심에 속한다.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의존하는 것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