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소명/중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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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유아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지적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구약의 이방인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성인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유아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 성경 말씀을 듣는 신약의 사람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기준이 모두 다르단 말인가?

이런 질문은 구원의 주체와 기준을 하나님의 은혜에 두지 않고 사람의 믿음에 두기 때문에 생긴다. 복음주의, 알미니안 주의, 그리고 세대주의는 구원의 중심을 피구원자의 믿음에 둔다.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고 믿음에 의해 천당에 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역사적 기독교의 전통에 뿌리를 둔 개혁주의는 구원의 기준과 주체를 사람의 행위에 두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은혜에 둔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 베풀고 심판할 자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오로지 당신의 선함으로 구원할 자를 선택하시고 그런 자를 부르시며 거듭나게 하신다.

죄인이 중생하면 나타나는 현상이 회심(conversion)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가 가르치는 구원의 순서는 중생이 회심을 앞선다. 회심하기에 중생하지 않고 중생하기에 회심한다. 회심은 중생의 결과이며 중생의 증거이다. 회심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회개며 또 하나는 믿음이다. 회개는 죄에 대해서 돌아섬을,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회심은 피구원자가 처한 삶의 정황과 계시의 양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태중에 있는 아기를 하나님이 선택해서 은혜 베풀어 거듭나게 했다고 가정해 보자–아마도 대표적인 예가 세례 요한일 것이다–. 그 아기는 회심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태중에 있는 아기는, 보통 성인에게서 발생하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 태중의 아기는, 죄의 열매, 이를테면, 도둑질, 살인, 거짓말, 탐심 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기에 이런 죄악에 대한 뉘우침이나 돌아섬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울러 아직 언어를 모르기에 성경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아는 믿음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태중의 아이는 회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 그것은 회심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회심을, 보통 성인에게서 발생하는 것처럼, 죄에 대한 극심한 회개와 함께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태중의 아이에게 회심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 회심을 중생의 결과로 인한 회심의 가능성까지도 포함한다면 태중의 아이에게도 회심은 일어난다. 즉 태중의 아이는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영혼이 있기에 그가 태어나서 보통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산다면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좇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성경 말씀을 접하면 그 말씀이 진리임을 깨달아 진리로 받아들이고(믿고) 그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가 거듭났기 때문이다.

만약 복중에 거듭난 아이가 태어나서 8세 정도까지 산다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성인이 지을 수 있는 죄보다는 적은 죄를 인식하고 그 죄에 대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만약 그가 성경 말씀까지 접했다면 그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부분까지 반응할 것이다. 만약 특별계시(성경)를 접하지 못한 상태로 죽었다면 일반계시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찾고 진리에 관해 목말라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