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예정 14)

1606

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초월적 차원에 관하여 사도 베드로는 매우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고 필자는 본다. 베드로후서 3:8-10의 말씀을 보자.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한 후 마치 당장 다시 오실 것 같은 말씀을 하셨다. 듣기에 따라 사도들이 살아있을 동안 다시 올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하셨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재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셨다(마 24:33-34). 묵시문학의 다중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적으로 해석했던 당시 사람 중 일부는 예수님의 재림이 그들 세대에 아직 발생하지 않자, 재림 자체를 부정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약속이 연기된 것도 아니다. 단지 하나님에게 있어 하루는 천년 같고 천년은 하루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단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천년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왜냐하면 이런 해석을 따르면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시간 안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 시간 밖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하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베드로전서 3:18-20의 말씀을 보자.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가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의 난제에 속하기도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19절이다.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는데, 이들은 누구이며, 그리스도는 무엇을 그리고 왜 선포했던가? “옥에 있는 영들”의 의미는 20절이 제공한다. 그들은 노아의 홍수 당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악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면 왜 그들을 가리켜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했는가? “옥”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먼저 “옥”이 지옥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순종한 그들은 모두 지옥에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지옥에 가셔서 그들에게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의해서 사도신경 원본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지옥(음부)으로 내려가사],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로 되어있다–한글 사도신경에는 “지옥으로 내려가사”라는 대목이 논란이 되자 빠지게 되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무엇을 그리고 왜 선포했던가?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가셨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의할 때 사후에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후 구원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성경 전체의 신학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와 심판에 대한 선포를 위해 가셨다고 주장한다–많은 복음주의 계열의 사람들은 이런 견해를 따른다. 필자도 이 주장이 많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부분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만약 베드로가 당시 지배적인 헬라식의 관용어를 사용해서 “옥에 있는 영들”을 단순히 육체와 영이 같이 있는 인격체라고 전제한다면–당시 헬라 문화는 사람의 육체를 영을 가둬두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다–새로운 관점이 가능하다. 즉 예수님의 영이 육체를 떠난 후에 초월적 차원에서 노아 홍수 당시의 사람들에게 회개와 구원과 심판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는(영원한 현재에서) 해석이 가능하지 않으냐고 필자는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즉 노아 홍수 시대에 이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선지자들과 노아와 양심과 천사들을 통해) 메시지를 받았는데 이것을 초월적 차원에서 본다면 수천 년 후 육체를 떠난 예수님이 영원한 현재에서 전파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영으로 계신 그리스도는 초월적 차원에 계시고, 초월적 차원에 계신 존재에게 하루는 천년 같고 천년은 하루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