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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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구원은 죄와 죄의 심판으로부터의 탈출로서 “이미”(already) 그러나 “아직”(not yet) 사이에 있는 과정이라고 앞에서 설명했다. 구원은 과정이므로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구원은 한 곳에 멈춰있는 바위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그렇다면 구원은 어떤 과정과 순서를 걸쳐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

개혁주의에서는 구원을 총 10단계로 구분하는데, 이는 구원의 역동성과 본질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구원의 순서는 (1) 예정, (2) 소명, (3) 중생, (4) 회개, (5) 믿음, (6) 칭의, (7) 양자, (8) 성화, (9) 견인, (10) 영화이다.

위에 열거된 순서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이다.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구원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초월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사차원의 시·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공간 안에서만 존재하고, 시간 안에서, 시간과 함께 존재한다. 시·공간을 떠난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서는 항상 원인과 결과가 있고, 사건의 순서가 있으며, 처음과 마지막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초월하여 계신다. 시·공간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지 원래부터 있지도 않고 자존 하지도 않다. 하나님에게는 원인과 결과가 없으며 사건이 순차적으로 발생하지도 않는다. 마치 5차원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하나님에게서 발생한다. 4차원 세계에서 현재는 순간이지만, 5차원 세계에서는 현재가 영원하다. 4차원 세계에서는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한 존재만 있을 수 있지만, 5차원의 세상에서는 무한한 존재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을 수 있다.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이 5차원 세계의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말할 때, 그저 초월적 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설명할 때 5차원 모형은 적절한 도움을 준다. 구원의 주관자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시·공간을 초월한 방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인 구원도 역시 시간 순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구원의 순서가 시간적이 아니라 논리적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구원의 과정에 있는 어떤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구원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주관하신 은총으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반영해야 하지만, 이차적으로 인간에게 일어난 일이기에 인간의 존재 방식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은 시·공간속에서 존재함으로 구원의 순서도 일정 부분 시간의 흐름과 동행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 방식을 결정하는 시·공간 속에서 구원을 보더라도 어떤 단계는 동시에 발생한다. 예를 들면, 소명, 중생, 회개, 믿음, 칭의, 양자이다. 이 여섯 가지 단계는 이론상 동시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의미한다. 특히 구원의 과정이 논리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앞의 여섯 요소가 한 사건에 대한 여섯 가지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육각뿔을 가정하자. 육각뿔의 꼭짓점은 하나이지만 이 꼭짓점으로 향하는 6개의 면(소명, 중생, 회개, 믿음, 칭의, 양자)이 있다. 이면은 동등하지만, 뿔을 보는 사람은 한쪽 면부터 차례로 보는 것과 같다. 개혁주의에서는 소명부터 먼저 본다. 그 이유는 구원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에 논리적 일관성이 유지되기 때문이고, 구원에 대한 모든 공로를 하나님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현재에서 예정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예정하신 자를 부르신다(소명). 하나님의 부름은 거절할 수 없다(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은 부르신 자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서 영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중생). 그러면 거듭난 사람은 죄에 대하여 돌아서고(회개),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인다(믿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의롭다고 칭하시고(칭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