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확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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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구원과 구원의 확신은 서로 다른 주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반면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을 얻는다. 즉 구원을 정의할 때는 믿음이 한번 들어가고, 구원의 확신을 정의할 때는 믿음이 두 번 들어간다. 믿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 구원의 확신이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 경우 우리는 그리스도를 직접 믿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것, 즉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을 믿는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오래전에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믿어야 하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기로 노력함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수 세기 전에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믿고 행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을 혼동함으로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 잘못된 것을 신뢰한다. 그들은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라는 말씀과 같은 복음의 약속에 확신의 근거를 둔다. 따라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참된 믿음과 유사 믿음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이 과연 올바로 믿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의 믿음이 진정한 구원적 믿음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질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그것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확신이 확보되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 근거는 무엇인가? 이 근거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고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에 요약된 바와 같이 세 가지이다. 이것들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상호 보완적이다. 첫째, 믿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진리이다. 둘째, 믿는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증거들이다. 셋째, 성령의 증거이다.

첫 번째로 믿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진리 없이는 구원의 확신 기초가 사라진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절대로 완전한 확신이나 확실성을 취득할 수 없다. 성경의 진리를 의심하는 자나 불신하는 자는 그 자신에게 있는 구원의 확신이 안전하다는 확실성을 절대로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구원의 약속에 대한 신적 진리의 인식만으로는 보증을 얻기에 충분치 않다. 많은 이가 그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성경을 형식적이며 역사적으로 믿는다. 약속을 포함하는 성경의 신적 진리만으로는 확신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성경은 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떤다고 말씀한다. 예를 들어, 화재로 인해 건물이 붕괴할 때 계약자에게 100,000달러를 지급하는 보험에 가입했다고 가정하자. 또한 이 정책은 참되며, 이 정책을 수립한 회사 역시 경제적으로 건실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당신은 이 보험 약관과 정관을 읽어 볼 필요도 없이 이 정책이 믿을만하며 건전하다고 확신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이 보험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믿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실제로 여러분의 건물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여러분은 손해 보험을 청구했다고 하자. 그런데 조사를 마친 후 보험회사는 손해를 전혀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발표한다. 보험 정책은 여전히 참되나 당신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건물의 일부를 석유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이고, 보험 정책에 의하면, 건물을 석유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경우 피해 보상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험 계약은 진정한 것이었으나 당신이 보험 정책의 세부조건과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변화된 새로운 삶의 모습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적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근거가 필요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