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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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선행이란 무엇일까? 가난한 사람들 구제해 주고, 다친 사람 도와주며, 적십자 같은 곳에 기부하는 것이 선행일까? 물론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의에 의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선행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일치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진리로 선포된 것과 우리 인간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많은 현대인이 동성애, 수간, 소아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계시에 의하면 이런 행위는 분명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선행이란 하나님이 말씀으로 명령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편으로 진리가 믿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이 열정에 대해서는 무게를 두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젊은 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슴은 뜨겁지만, 진리를 모르기에 그릇된 길로 간다. 이런 현상은 대단히 위험하다. 회심하기 전의 바울이 이런 상태였다. 그는 열정이 있었지만, 진리를 잘못 알았기에 주님의 교회를 핍박했다. 선행은 항상 하나님의 계시로 인한 진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다음으로 선행은 “선한 양심”에서 비롯해야 한다. 선한 양심이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착한 마음씨가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어서 생기는 마음을 의미한다. 선한 양심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선행을 할 때, 자기만족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됐느냐, 아니면 자기만족이나 자기 위로를 위한 마음에서 비롯하느냐에 따라서 선행 여부가 결정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장 2항을 보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선행은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들이요 증거이다.”

따라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선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선행은 성화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화가 거룩으로 향하는 내적 변화의 과정이라면 선행은 성화가 외적으로 나타난 행위이다. 그런데 누가 성화하는가? 회심한 사람이 성화한다. 회심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는 변화를 의미한다. 자기를 의지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다. 마귀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기독교인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예수 믿는’ 것이다. 또한, 예수 믿어 회심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거듭나게 해야 한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중생 되어 예수 믿어 회심하지 않는 사람은 선행할 수 없다. 성경이 가르치는 선행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 믿어 회심하고 의롭다고 여김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이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