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인간의 타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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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분명히 새로운 피조물인데 어떻게 아직 죄악이 남아 있는가? 죄악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은 완전주의를 주장한다.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죄악이 전혀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악을 자신의 옛 본성 탓으로 돌린다. 죄악은 옛 인격이 짓는 것이지 새로운 인격이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새로운 인격이 된 자신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죄악에 대한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죄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죄악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고 여전히 기뻐하고 구원의 확신을 한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전히 죄악이 삶 속에 남아 있단 말인가? 도대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이렇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죄악이 지배하나, 거듭난 사람은 성령과 하나님의 법이 지배한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죄가 왕 노릇 한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죄가 비록 남아 있으나, 왕 노릇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기 전까지, 독일, 이탈리아, 일본으로 이루어진 추축국이 유럽을 장악하고 있었다. 연합군의 게릴라식 특공대가 추축국 세력을 조금 귀찮게 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지배력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경우도 양심은 연합군의 게릴라식 특공대들처럼, 자신의 죄악에 약간의 번거로움을 준다. 양심은 죄가 왕 노릇을 하는 것에 저항하지만 삶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연합군이 대거 상륙하자 연합군은 지배력을 갖게 되었고 독일군은 도망치게 되었다. 이때 정상적인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독일이 이미 패망했다는 것을 알았다. 히틀러 자신도 알았다. 이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곧바로 손들고 항복하지는 않는다. 히틀러가 자살하고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또한,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기까지 이제는 역으로 독일군의 특공대들이 게릴라식 전술을 펼치면서 연합군을 괴롭힌다. 그러나 연합군의 지배력에 도전을 주지는 못한다. 거듭난 사람이 이와 같다. 신자가 거듭나는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며, 그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게 되고, 죄 아래 있지 않게 된다. 사도 바울은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혼비백산한 적의 무리가 완전히 진멸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패주했을 뿐이다. 그 패잔병들은 끈질기게 방해 행위를 계속하여, 가능한 많은 번거로움을 줄 것이다.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도 이와 마찬가지다. 죄악이 인생을 끊임없이 번거롭게 한다. 하지만 왕 노릇, 즉 지배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현실적인 면에서, 거듭난 사람도 죄를 짓기는 하지만, 의로운 일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