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칭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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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칭의는 본질적으로 부패한 인간에게 의롭다고 선언하는 행위이다. 죄인이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 때문이다. 예수님의 의와 인간의 죄가 교환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이 되셔서 심판을 받고 우리는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인간이 행해야 할 순종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하셨다. 인간이 당해야 할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갚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빚을 지는가? 순종의 빚과 심판의 빚을 진다. 이것을 갚아 주신다. 칭의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모두 다 나타난다. 칭의는 세 가지의 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작정이요, 둘째는 성취요, 셋째는 적용이다. 성부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에서 선택한 자를 의롭다고 여기기로 작정하신다. 이 일은 시간 밖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작정은 무한한 과거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 밖에서, 즉, 초월적 시공간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성자 하나님은 칭의를 성취하셨다. 칭의에 대한 성취는 2천 년 전에 이루어졌다. 2천 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한 순종을 이루시고 택한 백성의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감당하므로 하나님에게 진 빚을 갚았다. 그러나 각 개인이 현실적으로 의롭게 되는 때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때가 아니라 성령이 중생하게 함으로 회심하게 된 때이다. 작정, 성취, 적용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다 보면 어느 구절에서는 창세전, 영원한 현재에서 의롭게 된 것 같은 구절이 있고, 어느 구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때에 의롭게 된 것 같은 구절이 있고, 또 어느 구절은 각 개인이 직접 예수 믿을 때 칭의가 발생한 것 같은 구절도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1장 4항에서는 이 문제를 정리한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의롭다고 하려고 작정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때가 차매 그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들을 의롭다고 하심을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의롭다고 함을 받는 것은 성령께서 때를 따라 실제로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적용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칭의는 법적으로 죄인을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직 부패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죄를 끊임없이 짓는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칭의된 자의 죄를 간과하시는가 아니면 용서하시는가? 용서하신다면 우리는 반복해서 범하는 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1장 5항을 보자. “하나님은 의롭다고 함을 받는 자들의 죄들을 계속해서 용서해 주신다. 그리고 그들은 칭의의 상태에서 결코 전락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성적인 노를 살 수 있게 되며, 그들이 자신들을 낮추어 그들의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들이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하기 전에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죄를 범한다고 해서 한번 의롭다 한 것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매를 댄다. 이것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고, 징계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부성적 진노라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잘못에 대해 훈계하고 매를 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칭의는 구약시대 사람이나 신약시대 사람이나 모든 면에서 같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1장 6항에서는 구약시대에 살았던 성도가 칭의되는 방법은 신약시대의 성도가 칭의되는 방법과 모든 면에서 같다고 고백한다. 세대주의는 세대마다 의롭게 되는 방법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모세 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 신약시대에는 예수 믿어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지만, 개혁주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의 칭의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칭의와 모든 면에서 동일하였다” (11장 6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