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하나님의 계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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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이 문제는 철학적 범주에서 접근할 때 인식론에 대한 문제이다. 인식론이란 당신이 주장하는 것이 참인지 어떻게 아느냐–how do you know?–라는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다. 우리가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것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과거 계몽주의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이 인식론의 객관적 기준이라고 믿었다. 베이컨의 경험론이나 데카르트의 합리론은 모두 인간의 이성을 인식론의 객관적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칸트에 의해서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인식론은 실존주의로 넘어와 객관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사대는 진리란 상대적이다고 하면서 객관성 자체를 부정한다. 오늘날에는 더는 객관적 인식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객관적으로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보편적 공통분모(neutral ground)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식론은 그 출발점에 반드시 전제(presupposition)를 갖는데, 전제는 반드시 주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제가 객관적이라면 더 이상 전제가 될 수 없다. 전제는 반드시 주관적이어야 한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인식론의 출발점이 주관적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공통분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 신자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냥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믿음은 무조건 되지 않는다. 또한 예수님이나 성경은 한 번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믿음은 본인이 아는 만큼, 설득되는 만큼만 생기기 때문이다.

자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객관적 인식론이 무너진 오늘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2000년 전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탁월한 가르침을 주셨다. 요한복음 8:31-32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즉 인식론에 관한 질문을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어떻게 아느냐? 이에 대해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나? “그냥 무조건 믿어 그러면 알게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이 약속의 메시아라는 수많은 증거를 보여주었다. 구약에서 예언된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성경 말씀의 올바른 해석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기적을 통해서… 그런데도 이들은 무조건 예수님을 부정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인식론에 대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진리를 안다고 했다. 인식론에 대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진리를 아는–인식 할 수 있는–선행 조건이 무엇인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안다고 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다. 즉 인식 이전에 행위, 즉 삶이 선행한다. 이 논리를 성경 말씀에 대한 인식론과 연결하면 이렇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라는 질문에 대해, 당신이 성경 말씀이 가르쳐 준 대로 행하면, 즉 그렇게 살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당신은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