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하나님의 계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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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인식론을 부정한다. 계몽주의 시대는 인간의 이성을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으로 삼았지만, 이런 입장은 실존주의 시대를 거처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는 더는 통하지 않는 주장이 되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바탕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변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고백서 1장 4항을 보자. “우리가 성경을 믿고 복종해야 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 때문인데, 그 성경의 권위는 어느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證言)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의 저자이신 (그리고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무엇을 증명하거나 주장하거나 맹세할 때 자신보다 더 높은 것의 권위로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할 때, 회사 동료의 이름보다는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때 더 신빙성이 있다. 무엇을 주장하거나 신빙성을 증명하려고 하면 항상 증명되는 대상보다 더 높은 것이 증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맹세할 때면 항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최고의 권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맹세하실 때는 누구의 이름으로 해야 하나? 누가 하나님보다 높은가?

같은 논리로 성경의 권위는 무엇이 증명해야 하는가? 성경은 성경이 증명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것보다 더 높은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학문과 이론은 성경이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신앙고백서는 가르친다. 이점이 바로 개혁주의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한가지이고 로마 가톨릭과 구분되는 인식론의 차이점이다. 로마 가톨릭은 인식론 면에서 성경 위에 교회가 있다. 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교회가–특별히 교황이–그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정경과 외경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 역시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에서는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성경이 교회나 교황보다 위에 있다. 교회의 모든 권위와 제도와 정치와 교육과 예배는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다. 성경을 모든 인식론의 출발점으로 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4항을 다시 보자. “그 성경의 권위는 어느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證言)에 의존하지 않고”라고 한다.

다음으로 인식론에 대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령의 역할이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 그 자체와 더불어 성령께서 증언해 주심으로 세워진다. 신앙고백 1장 5항은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 마음속에 그 말씀으로 그리고 그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면적 사역으로부터 온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양은 시력이 무척 나쁜 동물이다. 대신에 귀는 발달하여 있다. 그래서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자기 목자를 따라간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이므로 하나님의 구원받은 양은 하나님의 음성인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능적으로 안다. 그리고 이렇게 알 수 있게 해주는 분이 있는데,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영이 죄인의 마음에 들어와서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 바로 그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인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