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거룩(레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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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시카고)

 

 

바리새인들은 외식주의자들입니다. 외식이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겉만 신경 쓰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마23:1-12). 그들은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더욱 외형적인 면에 치중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 어귀나 회당에 서서 큰 소리로 기도하며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였습니다. 화려한 종교적인 옷을 입고 경건한 척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대중들은 그들의 이런 제스처에 속아 그들을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신앙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눈에 보이는 경건의 형식, 외형만을 중시하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딤3:1-5)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들에게 주님은 회칠한 무덤이라는 비난의 말씀을 하셨으며 맹인이면서 맹인을 인도하는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로마서 12:1-2절은“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은 성도의 삶 즉 거룩한 행실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행실은 마음이 새롭게 되어 즉 외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세상의 가

치들을 추구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 즉 거룩하신 그 뜻을 분별하며 사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속화 된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거룩입니다. 참 이스라엘이요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열방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거룩히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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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리가 없다면 교회 또한 단지 하나의 인간적인 모임에 그칠 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다른 어떤 것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속에서 실현시켜 나가야만 하는 존재론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성으로 가득한 인간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이런 경건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인간의 본성은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선한 의도로 어떤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에서 “저희가 내 안에 내가 저희 안에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성령께서 보혜사 역활을 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진리를 깨우쳐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시며 신자에게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성화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시는 순종의 자유와 사탄을 물리치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내 힘과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성결의 삶, 경건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말씀과 기도에 힘써 성령에 충만함을 받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경건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