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거룩한 이름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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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예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의 한자문화권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본명을 부르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 뒤에 자(字)를 부르는 관습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아마 이 관습을 아실 것입니다. 누군가 조부나, 부친의 이름을 묻게 되면 한국에서 좀 예의를 안다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홍 ‘길’자 ‘동’자를 쓰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홍길동’이라면 이를 높여 불러 홍 ‘길’자 ‘동’자를 쓴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씨인 ‘홍’에는 자를 붙이지 않을까요? 이는 성씨임으로 이를 높이면 나 자신을 높이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성에는 자를 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자를 붙여 부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아예 별도의 호칭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그것을 ‘호’라고 합니다. 보통 이름 앞에 붙여 사용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라고 할 때 이름 앞에 붙은 ‘백범’이라는 것이 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관본위’라고 해서 사람이 관직에 오르면 그 관직명을 부르는 것이 한국에서는 예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도 우리의 습관 속에 남아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사장님’ ‘회장님’과 같은 칭호를 많이 사용합니다. 서로 간에도 박사장 김사장 이렇게 부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를 더 언급 하자면 피휘(避諱)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휘’자는 꺼린다는 의미로 ‘부르기를 꺼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예로부터 군주나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않았던 풍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피휘’의 관습은 더 어려운 것인데 임금님의 이름으로 사용한 한자는 아예 모든 책과 문장에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당태종의 이름이 ‘이세민’인데 그의 이름이 세상’世(세)’와 백성’民(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종 단어에서 이 두 글자가 들어간 단어들을 모두 다른 글자로 대체하는 큰 일 아닌 큰 일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골치가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경우 세자들이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 그가 사용하던 이름의 한자어를 흔치 않은 한자로 바꾸어 개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성’자는 이룰 성(成)이라는 글자인데 이것은 너무나 많이 사용하는 상용한자라 이를 다른 한자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임금님의 이름을 ‘피휘’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문화에 익숙합니다. 이는 예법이었고 또한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의미였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도 이와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6:9) 하늘 아버지의 이름 또한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여호와의 이름을 귀하고 거룩하게 부르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지존자(至尊者)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이야기 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 11:9)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나님의 칭호나 명칭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기도함으로 여호와 앞으로 나아갈 때에 거룩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늘의 천사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그렇다면 유한하고 죄 많은 존재인 우리는 한층 더 경건한 태도로 우리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것에 대한 그 영적 중요성을 잊고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이 부르지 말 것에 대하여는 이미 십계명에 기록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대화와 이야기 가운데 여호와의 이름을 가벼이 부르거나 사사로운 말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께 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부르는 그 첫 마디에 우리의 마음과 존경과 경배를 담아 기도하시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