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난의 아름다움 Beauty of Suff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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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고난을 원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고난을 피하고자 한다. 고생을 피하여 꿈을 가지고 미국에 왔지만 삶은 여전히 고난이다. 하나님께 죄가 없는 아들은 있어도 고난 없는 아들은 없다(어거스틴). 고난은 육체만 아니라 정신과 정서, 관계의 모든 면에 미치고 고난과 아픔을 없애고자 학문과 산업이 발달하였다. 예수 믿으면 고난이 없고 모든 것이 잘 되고 복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주께서는 고난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하시다. 사실 하나님을 믿고 주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겪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 인정되던 욥이나 요셉, 다니엘, 사도 바울만 보아도 그렇다. 고난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고 살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선하신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면 고난에는 그의 좋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고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고난이나 고통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된다. 고통을 버려두면 죽음을 맞을 수도 있기에 일찍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지혜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찾아온 친구들은 그의 죄를 지적한다. 나면서부터 맹인인 자를 보던 예수의 제자들은 그것이 자기 죄인가 부모의 죄인가 묻는다. 죄로 인한 고난이라면 죄를 알아 회개하고 용서 받게 되니 고난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고난이 아니면 죄를 모르고 죽음으로 나갈 것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되기에 고난이 유익이라 고백한다.

고난은 도움을 구하는 기회가 된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이라도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 약이나 의사, 상담자, 또는 누구를 찾아 도움을 받는다. 나 혼자의 섬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주며 어울려 산다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가장 귀한 것은 고난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목회할 때 사순절에 금식하며 주를 기억하고 가까이 하는데 아내의 비판적인 말 한마디에 영혼이 깊은 실망과 어둠에 빠지게 되어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부활주일을 맞을 수 없어 토요일 아침 성전에 앉아 도움을 구하는데 부활하신 주께서 강단에 나타나셨다. 순간 모든 어둠 고난이 걷히고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솟아올라 넘쳐났다. 어둠이 아니면 얻지못할 경험이다.

고난은 훈련으로 인내와 믿음을 기른다. 성경에 고난 당하는 자는 모두 인내하며 주의 사람으로 더욱 확실하게 훈련된다.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그를 바란다고 한다. 백세에 얻은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산으로 가는 아브라함의 고통이 어떠할까? 그러나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상속자는 고난으로 훈련된 후에야 된다.

남을 위한 고난이 있다. 강도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돌보아준 사마리아 사람같이 코비드로 쓰러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의료인,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전쟁에서 희생하는 군인이 있기에 생명과 평화가 주어진다. 아무런 죄가 없이도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니 성도는 그의 고난을 사순절만 아니라 항상 기억하고 자기도 그렇게 살고자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