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요하라 잠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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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 순복음충만교회 담임(시카고)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마가복음 4:39)

 

예수님의 제자들이 큰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습니다. “누구이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과바다는 예수님에게 순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요에 대한 4가지 교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풍랑 전의 고요입니다(35~36절). 그날 예수님은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셔서 가르치셨습니다. 몰려드는 무리로 인해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식사할 겨를조차도 없었다고 했습니다(마가복음 3:20).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그의 제자들에게 다소간의 쉼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날 저물 때의 갈릴리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순풍에 돛을 달고 아무런 걱정 없이 바다 건너편으로 향했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풍랑 속의 고요입니다(37~38절). 갈릴리 바다의 고요가 갑작스런 풍랑에 의해서 깨어지고 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큰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갈릴리 바다의 큰 풍랑 속에서도 평안하게 주무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주무신 것은 이때가 유일한 경우였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주무신 것은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신 참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큰 풍랑이 일어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떻게 주무셨을까요?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풍랑 후의 고요입니다(39절). “잠잠하라 고요하라.”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배를 덮을 만큼 컸던 물결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거울의 표면처럼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심으로 다시 한번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넷째로 고요 후의 풍랑입니다(40~41절). 풍랑을 고요케 하신 후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첫째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둘째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들이 풍랑을 무서워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었다면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풍랑 속의 고요를 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두 가지 풍랑이 일어납니다. 우선 말씀에 불순종할 때입니다. 선지자 요나가 겪었던 풍랑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풍랑을 일으키셔서 그를 돌아서게 하셨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믿음을 더하실 때입니다. 제자들이 겪었던 풍랑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해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풍랑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을 그들에게 더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 뜻하지 않는 풍랑을 만나셨습니까? 풍랑 속의 풍랑으로 남아있지 마십시오. 풍랑 속의 고요이신 예수님을 깨우십시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예수님은 깨셔서 우리가 겪는 풍랑을 고요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