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가 피난처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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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 교회 담임)

평양의 한 농촌 마을, 한 소년이 민들레 하나를 꺾어 힘차게 분다. 사방으로 날아가는 홀씨들. 그 중에 용감한 홀씨 하나가 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산과 물을 건너 북미 대륙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민들레 씨앗은 어느 집 아름다운 앞마당 잔디밭에 떨어진다. 낯선 땅이었기에 두려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푸른 잔디들이 민들레를 보고 신기한 듯 호기심을 보였다. 비옥한 흙으로 자신을 덮으려고 하자 곁에 있던 잔디들이 말한다. “이곳은 네가 정착할 땅이 아니야.”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민들레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두세 배 노력해야 했다. 마침내 잔디밭에 혼자 노란 꽃을 피운 자신을 민들레는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주인이 마당으로 나와서 민들레 꽃을 보는 순간 질색하며 민들레를 뽑기 시작했다. 뿌리가 깊이 박혀서 절반만 뽑혀 나왔고, 주인은 그 절반을 길가에 던져 버렸다. 잔디들이 말했다. “우리가 말했잖아. 너는 여기에 속해 있지 않다고. 썩 꺼져!”

민들레는 주인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노란색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민들레는 잔디의 푸른 색으로 동화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푸른 색이 된 민들레는 살아남았지만 기쁘지 않았다. 아무리 잔디처럼 되려고 애써도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민들레는 다시 민들레 자신이 되기로 한다. “비록 몇 주 밖에 살 수 없을지라도, 수백 개의 하얀 씨를 만들어 널리 퍼뜨릴 거야.” 민들레가 품은 새로운 꿈이었다.

고 이정용 박사의 <마지널리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적어도 이민자라면. 왜 그런가?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낯선 땅에 와서 뿌리내리고 살려고 남들보다 두세 배 열심히 일하면서 주류 사회에 들어가려고 몸부림쳤으나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험, 백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려 하다가 좌절한 우리 2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의 이야기에서 민들레는 자기 자신이 되기로 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이어야 하는가?

성경은 이 땅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나그네요 거류민이며 외국인으로 규정한다(벧전2:11). 미국에서의 신분이 영주권자이든 시민권자이든 상관없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 타국인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세상과 이웃을 보는 우리의 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그네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나그네다. 외국인의 설움을 아는 사람은 외국인이다. 그래서 성경은 다시 말한다. “외국 사람이 나그네가 되어 너희의 땅에서 너희와 함께 살 때에, 너희는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레19:33-34)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가 ‘교회가 피난처가 되겠습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다. 신분 상 서류 미비자들을 비롯하여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민자들을 돕기 위한 교회 연합 운동이고 네트워크이다. 나그네와 외국인을 본토인처럼(즉 시민권자처럼) 여기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위한 일이다. 그것이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시민권을 둔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믿기에 나선 걸음이다. 함께, 민들레 홀씨를 퍼뜨려 보지 않겠는가.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 창립예배는 내일(5/31) 오후 5시 시카고순복음교회 유투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