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원의 신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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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여리고를 지나던 예수님은 그 지역 세리장인 삭개오를 만나셨습니다. 주님께선 이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에게 “빨리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말씀 중 “머물러야겠다”는 표현은 영어 성경이 원문의 뉘앙스를 잘 드러냅니다. “I must stay.” 삭개오의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주님은 이 표현을 통해 당신이 삭개오를 보시고 부르시고 그의 집에 머물게 되신 이 모든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십니다. 삭개오와의 만남이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지금 그 계획을 주님께서 실현하고 계신 겁니다. 도대체 주님께선 언제 이 계획을 세우신 걸까요? 우리가 이미 묵상한 에베소서 1장 4절과 5절 말씀에 답이 담겨 있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 그러니까 창세전이라는, 우리가 영원 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 때, 하나님께선 삭개오와의 만남과 구원을 이미 계획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지금 독생자 예수를 통해 이루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삭개오에게 “I must stay at your house,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삭개오의 구원 사건을 통해,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모든 성도들아, 우리 함께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자”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필이면 죄인의 집을 택해 들어가신 주님의 행동을 문제삼고 있는 겁니다. 무리들의 불평이 무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 같은 장면이 우리들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비유들 중 곡식과 가라지 비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주님께서 곡식으로 비유한 천국의 자녀들과 가라지로 비유한 악한 자의 자녀들이 섞여 살아갑니다. 이 모습을 보고, 천사들이 지금 가서 가리지를 뽑아 버릴까요 하고 묻자, 하나님께선 가라지를 뽑으려다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가 되니 마지막 때까지 놔두라고 하십니다. 지금 당장의 모양만 봐서는 가라지와 잘 구분이 안 되는 그런 곡식들도 있다는 걸 뜻합니다. 천사도 가라지와 구분해내기 어려운 그런 곡식들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삭개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돈 벌기 위해 세관이 되고, 악착같이 일해서 세관장이 되고, 그 직책을 악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워온 삭개오, 그런 모습만 보아온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영락없이 마귀의 자식인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눈에는 창세 전부터 택해 두신 곡식이었던 겁니다. 복음서엔 그런 인물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군대 귀신들렸던 이방인입니다. 귀신 들려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공동 묘지로 쫓겨나 사는 사람을 누가 천국의 자녀로 보겠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광풍이 몰아치는 호수를 건너가, 그를 만나 주셨고, 치유해 주셨고, 구원해 주셨으며, 복음을 증거하는 소명까지 주셨습니다. 군대 귀신 들렸던 그 이방인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해 두신 곡식이었던 겁니다. 정말 심하게 자격이 없어 보이는 이 사람들이 구원받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그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특히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그저, 누구를 만나든 그가 잃은 영혼이라면, 그가 누군지 따지지 말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전도의 소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도의 과정에서, 삭개오와 같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변화되는 신비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신비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