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원, 그 신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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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묘한 명령을 주십니다. 묘하다고 표현한 건, 상식적으로 볼 때 여러가지 면에서 이해하기 좀 어려운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시점입니다. 사마리아 교회는 전적으로 빌립의 헌신 위에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교인들은 빌립을 존경했고 잘 따랐습니다. 그러니 이제 막 세워진 사마리아 교회를 건강하게 잘 세워갈 적임자는 바로 빌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빌립을 다른 곳으로 보내시는 겁니다. 가라고 하시는 장소도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명령하신대로 사마리아를 출발해 내려가서 예루살렘과 가사를 잇는 도로가 서로 만나는 장소로 가면 그곳은 광야인 겁니다. 50마일이나 떨어진 그 먼 거리, 인적도 드문 광야로 보내시면서 왜 가야 하는지 그 이유도 알려주시질 않습니다. 그러니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순종합니다.

같은 말씀에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등장합니다. 그는 영적으로 목말라 하는 인물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남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다 갖춘 사람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여왕의 국고를 맡을 정도로 큰 권세를 가졌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해 보입니다. 당시 책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중세 때 필사한 성경 한 권 값을 2억원 정도로 추산한 자료를 보았는데, 내시가 살던 시대엔 더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사야서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니 엄청난 재산가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배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날 정도입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직선 거리로만 약 500마일이 되는 먼 길입니다. 절기 때라면 예루살렘에서 지내야하는 7일, 그리고 왕복 여행에 드는 시간을 더하면 집과 일터를 약 한 달이나 떠나있어야 하는 대장정입니다. 국고를 담당하는 중직자로서 여왕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대단한 신앙입니다. 반면에 영적 갈증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인데다 내시였습니다. 이방인은 성전 바깥 정해진 자리에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계명에 의하면 내시는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먼 길을 달려 예루살렘에 도착해도 기껏해야 이방인의 뜰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방인의 뜰은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 제물에 사용될 짐승을 파는 장사꾼들 때문에 소란스러워 제대로 예배 드리기 힘든 그런 장소였습니다. 그러니 영적 목마름이 컸을 겁니다. 여행길에 이사야서를 가지고 다니며 읽는 모습에서도 영적 목마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6장에는 하나님을 믿는 고자와 이방인들도 하나님 앞에 나와 직접 제물을 드릴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유대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 예배드릴 수 있는 날을 간절히 기다려왔을 겁니다.

하나님께선 신비한 방법으로 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어 영혼이 뜨거운 빌립과 온 세상 만민들이 똑같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의 때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광야에서 만나게 하신 겁니다. 성령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를 궁금해하던 빌립은 때마침 이사야서 53장, 즉 예수님 당하실 수난과 그 이유를 예언하고 있는 말씀을 읽고 있는 이방인 내시를 만난 겁니다. 이 신비한 만남을 통해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침례를 받게 됩니다. 영적 갈증이 해소되는 기쁨을 체험한 겁니다.

구원의 순간은 모두가 이처럼 다 신비합니다. 창세전에 이미 택하신 자를 향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폭포수처럼 임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