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을 따르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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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기독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는 ‘인간은 죄인’이라고 선포함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9:2)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땅으로부터의 의가 아닌 하늘로부터 임한 새로운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내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로 덧 입혀져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다 여겨지는 은총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실족시키고자 원수 마귀는 포기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구원의 은혜를 입었지만, 끊임없이 믿음의 길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바로왕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감격도 잠깐, 광야에서 하나님을 수차례 시험하다가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할 당시 20세 되는 성인 가운데는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살아남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다른 이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의 불행했던 역사를 예로 들면서 고린도교회에 경고하는 말씀이 바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빛을 비추어주시고, 강한 손길로 성도를 견인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오순절에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성령 받은 이후 제자들은 모든 면에서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의 출발점입니다.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5:16).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이 말씀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다 같은 의미의 표현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의 삶은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닌 성령님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성령 안에 서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령을 따라 행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욕심을 이루고자 할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언제나 성령을 거스르게 되어 있습니다. 추구하는 목적이 달라서입니다.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성령이 아닌 육체의 소욕에 귀를 기울이면 마땅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맺어야 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말씀합니다.

진정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성령을 거스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써 성령의 열매라는 증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음으로 참된 생명에 연해 있음을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열매는 영생입니다.

– 자기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