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극심한 고통의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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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누구나 매일 생활에 고통이 있다. 배고픔과 목마름, 약함과 질병, 두려움과 소외, 욕정과 실패, 깨어지는 관계 등으로 아픔과 좌절이 있다. 하나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어제 오늘이 아니라 역사에서 언제나 있는 일이다. 이런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에서 교훈을 받는다.

성경은 고난과 아픔이 가득한 역사를 기록한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경우 그가 75세가 된 때에도 혈통을 이어갈 자식이 없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라 그러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이름을 뛰어나게 하고 세상에 복을 주는 복덩이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다. 자식이 많이 나고 그의 이름이 유명하게 되고 그로 인해 세상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이다. 꿈에도 원할만한 큰 소망에 이끌려 그는 부인과 함께 안정된 고향을 떠나 나그네의 삶을 시작하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것이다. 그의 나그네 삶에는 발붙일 땅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고난에 고난이 연속될 뿐 자식이 날 징조는 보이지 않은 가운데 세월은 흘러간다. 더 이상 자식을 기다릴 수 없으니 자기 하인을 상속자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나 하나님은 그가 아니라 그 몸에서 나는 자식이라고 한다. 부인은 자기의 불임을 알고는 하녀를 통하여 대신 자식을 얻고자 하고 아브라함은 하녀를 통해 고향 떠난 12년만에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은 그 아들이 아니라 부인을 통하여 아들이 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 할까? 다시 12년이 흐르고 이젠 부부의 생산 능력이 멈춘 상태가 되었는데도 하나님은 부인을 통하여 아들이 날 것이라 한다. 믿을 수 없는 웃기는 일이었으나 드디어 1년 후에 약속의 아들이 태어나다. 100세에 자식 없는 부끄러움, 인내하며 기다리던 고통을 벗었다. 얼마나 감격이요 기쁨인가! 아들이 잘 자라고 있는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을 3일길 되는 산으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번제로 바치라고 한다.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나? 그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런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부인에게 내용을 말하지 않고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나다. 그에게 이 3일은 어떠하였을까? 갈등과 고통!! 의심과 원망!! 그는 불가능에서 받은 아들은 자기 것이 아님을 인정한듯 산에 도착하여 그를 묶어 제물로 드리는 찰라에 하나님은 그를 중단 시키고 그의 믿음을 확실히 인정하고 그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시작하다.

동방에서 가장 큰 갑부로서 7남3녀를 둔 욥은 의롭고 정직하고 참으로 경건한 자라고 하나님이 자랑하던 사람이다. 어느날 그의 모든 재산과 자녀를 갑자기 잃게 되었다. 그의 온 몸에 성한 곳이 없도록 가려운 부스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주를 잘 믿는 자가 이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계속 붙들고 믿을 수 있을까? 그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라며 찬양하였다.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전보다 배가 되는 복을 받았다.

주의 부르심을 받은 엘리트 바울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며 믿음의 길을 달려갔다. 오늘 나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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