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도와 말씀의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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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초막절이 끝난 후,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이 지극히 당연한 행위를 성경에 굳이 기록해둔 이유는…감람 산으로 가신 예수님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당연하듯이, 주님께서 감람 산으로 올라가신 행동도 아주 자연스런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주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올라가셨다고 기록합니다. 따르던 제자들의 눈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또는 습관으로 보일 정도로, 주님께선 감람 산에 자주 올라가셨던 겁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주님께 감람 산은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기도의 장소였던 겁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선 매일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듯이, 예루살렘에 오시면 매일 감람 산에서 기도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들과 매일매일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치르셔야 했던 주님은 기도를 단 하루도 쉬지 않으셨던 겁니다.

2015년 ‘War Room(워 룸)’이라는 기독교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 중년 여성이 시장에 나온 집을 보러 방문했다가, 집 주인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노년의 집주인은 중개업자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걸 보고, 자기 집에서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방을 보여줍니다. 기도 방입니다. 노인은 이 방의 이름을 워 룸이라 불렀습니다. 매일 감당해야 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작전을 세우는 방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은 겁니다. 노인은 이 워 룸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풍성하게 체험했는지를 나눕니다. 크게 도전 받은 중개업자는 자신도 워 룸을 만들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알렉스와 스티브 켄드릭은 목사 형제로 셔우드 침례교회를 공동으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무실에는 ‘기억의 벽’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사건들을 사진으로 담아 전시해둔 공간입니다. 워 룸은 두 사람의 기도 체험에서 탄생한 겁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다 영적 전쟁터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워 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는 새벽 미명의 한적한 곳과 감람 산이 워 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겐 워 룸이 있습니까?

다음 날 아침 일찍 성전에 오신 예수님은 가르침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군중 가운데 세우고, 이 여인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으냐고 주님께 다그쳐 묻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목적으로 간음한 여인을 덫으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어려운 상황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만약 모세의 법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 하시면, “죄인의 친구”로 오셨고, 죄인을 치유하러 오셨다는 평소 가르침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여인을 용서하라고 하시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심각하게 도전 받게 됩니다. 딜레마에 직면하신 겁니다. 이때 주님께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써내려 가셨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주님께서 땅바닥에 쓰신 내용을 궁금해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론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 장면에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손으로 뭔가를 쓰신 경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쓰신 내용을 알 순 없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문장에 사용된 동사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장에 사용된 ‘카타그라포’라는 헬라어 동사는, 반대하다 맞서다 반박하다라는 뜻을 지닌 카타라는 전치사와 쓰다라는 동사 그라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글을 쓰고 계셨던 겁니다. 주님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쓰고 계신 글을 읽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빨리 대답하라고 주님을 다그치던 그들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른부터 시작해서 청년들까지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하나님 말씀의 엄청난 능력, 그 무한한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께 몰려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주님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넘어뜨리고 짓밟고 싶은 심정으로 몰려온 겁니다. 그런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돌로 치라” 아니면 “용서하라” 둘 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께서 쓰신 글을 읽고, 건네신 한 마디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은 겁니다. 그리곤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겁니다.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이 기적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은 말씀의 능력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성경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래선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또한 말씀의 능력도 믿지 않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도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를 온전하게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