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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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교회/ 미육군 채플린)

“나는…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요1:23)

캘리포니아에 새들백교회를 담임하는 릭 워랜 목사는 인생을 이끌어가는 다섯가지 주요 요소들을 그의책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이들은 죄책감에 매여, 또는 증오심으로, 혹은 두려움에 갇혀, 혹 물질의 노예로, 그리고 어떤이는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각각 저마다의 인생을 드라이브해가는 대표적 요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첨가하라면 “인기”(Popularity)가 들어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연예인들은 인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다고 합니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위해선 국민의 안전과 경제의 위기까지도 자신의 “인기유지”와 맛바꿀 수 있다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집단임을 동서고금의 수많은 역사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인기”를 따르는 천박함이 교회안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교회들엔 “유명교회”가 생겨났고, 목사들가운데는 “인기목사”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인기”있는 유명 브랜드를 가진 상점처럼 프랜차이즈 교회들이 거대 도시마다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메가처치들은 유명교회가 되었고, 그곳의 담임목사들은 인기목사로 불려집니다.  어떤이는 이같은 대형교회로 쏠리는 현상을 가르켜 교회 생태계의 위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자연 생태계가 갑자기 등장한 외래종에 의해 그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리듯 말입니다.  종종 티비에 방송되는 내용중에 플로리다에 급격히 늘어난 외래 파이돈에 대한 뉴스를 보게됩니다. 거대한 뱀, 파이돈이 등장하여 토종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면서 에버글레이즈의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방송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레미야라는 선지자는 “인기”와는 동떨어진 사람였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혐오하는 멧세지로 그들의 양심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설교의 주제는 “멸망과 징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인기”있는 설교와 “유명”한 선지자를 찾는 사람들의 귀엔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귀찮고 거북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이같은 인기없는 선지자, 예례미야는 동역자들에게서 조차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당했고, 사람들은 그를 조롱거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기없는 메세지”를 전한 “인기없는 선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하나님앞에서”(Coram Deo) 살아가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내 심장”과 “내 폐부”를 살피시는 분이시며, 오직 나의 헌신의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렘20:12)  예레미야서에서 발견한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기있는 선지자들의 인기있는 메시지들과 함께 처참히 민족이 패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과 “인기”를 따라사는 것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앞에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느냐?  선지자를 보러더냐? 옳다!” (마11)  주님이 제자들에게 상기시키신 것은  나를 따른다는 것은 “유명해 지려고,” “좋은 옷입으려고,” 광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 “회개하라”고 외치는 선지자의 투박한 음성을 들으려 함이 아니었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무명한 선지자 요한은 자기를 소개하길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요!” 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름도 형체도 없는 단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깨어지고 찢긴 주님의 몸인 오늘의 교회상은 아마도 “인기”를 쫒는 천박한 신앙과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한 불순한 야욕이 빚어낸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여겨집니다.  바른 신앙의 회복은 우리의 생각과 의도조차 알고 계시는 하나님앞에 (Coram Deo) 벌거벗은 모습으로 정직히 서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 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편식함없이 소화하고 순종할 때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언제까지 세상과 하나님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방황의 길에 머무르고자 하십니까? 여기, 갈멜산에서 호통치는 엘리야의 음성이 오늘 우리에게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8:21)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