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함량미달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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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물질이 어떤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분량을 나타낼 때 쓰는 ‘함량’이라는 말은 주로 물질과 관련하여 쓰이지만, 인간이 갖추어야 할 품격을 물질의 성분에 빗대어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함량미달 식품, 함량미달 의약품, 함량미달 제자, 함량미달 목사, 함량미달 정치인 등 ‘함량미달 자’들이 주변에 부지기수입니다. 나는 ‘함량미달 부끄러운 제자’입니다. 내 이름은 베드로,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신약성경에 우리 12제자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한 구절들이 4군데 있는데, 그때마다 나를 ‘리스트’의 첫 자리에 놓아 말로는 나를 대변인 혹은 ‘리더’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함량미달 문젯거리 제자’였습니다. 복음서에 나 보다 더 말 많고, 더 많은 질문, 더 많은 망신, 더 많은 실수와 용서를 반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흥미롭고 감사한 것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신약성경에는 나 말고는 한 사람도 없었으니 동명이인 혹은 동명다수의 혼잡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며,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전도여행을 다닐 때는 늘 아내를 데리고 다니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치맛바람에 의지하는 마마보이는 아니고, 우리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던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항상 어머니 살로메와 함께 예수님을 따라 다닌 마마보이들입니다.

예수께서 나 같은 무식쟁이 어부를 선택해서 부르시고, 승천 후에 복음을 전할 강한 ‘리더’로 훈련 시키셔서 말씀에 순종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며, 겸손하고 끈기 있게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사도가 되게 해주신 것은 순전히 그의 은혜입니다. 우리 동료 12명은 3년 반 동안이나 그와 함께 했고,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하늘나라에서 아주 특별한 자리와 상급까지 약속 받았으니 우리는 은혜위에 은혜, 분에 넘치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터키 북부지방인 소아시아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 할 때, 젊고 유능한 제자 요한 마가(John Mark)가 통역을 맡아 주었고 내가 전한 메시지들을 모아 마가복음을 기록 편집하여 내가 직접 기록한 책만큼 나에 관한 많은 내용들을 소개했습니다. 내 이름을 딴 일반서신 베드로 전 후서는, 학문이 짧아 부끄러운 나를 대신해서, 바울의 전도 파트너였던 실라가 대필해 주었으며,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도 전반부는 사실 성령께서 나와 요한을 통해 일하신 기록이랍니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 네로가 로마 시내를 불 질러 몽땅 잿더미로 만들고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유대인들에게는 이단으로, 로마인들에게는 방화범으로 몰려 ‘샌드위치’ 박해를 견디다 못해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던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동료 바울과 나도 그들에게 붙잡혀 순교를 당해 세상을 떠나 주께서 계시는 아름다운 이곳으로 왔습니다. 막상 와 보니 와! 이 엄청나고 장엄한 광경을 글로 옮겨 여러분에게 전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나는 ‘함량미달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어디 나 베드로뿐이겠습니까? 돌아보면 누구 나 자신들이 부끄러운 ‘함량미달 자’인 것을…. 그래서 그 유명하다는 바울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고전 15:10)라고 은혜를 고백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