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를 따르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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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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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자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 (마 4:20).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부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먹고사는 사람이다. 호수와 배와 그물은 그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하지만 주님이 부르니 그들은 이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 생사를 다 주님께 맡기며 따랐다. 더군다나 지금 베드로와 안드레가 버린 그물은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가득 잡힌 그물이다.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상태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기술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 그물로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린다. 그랬더니 고기가 그물 가득히 잡혔는데, 잡힌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라고 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빈 그물을 버린 것이 아니라, 물고기로 풍성한 그물을 버렸다. 사실, 예수님이 따르라고 했을 때, 빈 그물과 같은 상태에 있으면 따르기가 쉬울 것이다. 고기 잡는 것이 벌이도 안 되고 시원찮으면 다른 거라도 해서 살아봐야지 하면서, 시험 삼아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도 있다. 그런데 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버리고서 떠나기란 쉽지 않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할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저와 한번 사업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자기와 함께 머물러서 자기를 부요케 해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동안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조금 있다가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다. 그들도 어부다. 그들은 무엇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나?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 4:21-22).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때로 가족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물론 가족을 버린다는 의미가 가족을 내팽개치고 보살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마가복음 1장 20절에서는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라고 했다. 그들은 삯꾼을 쓸 정도로 어느 정도 잘 나가던 어부였다. 아버지를 맡겨두고 요한과 야고보가 떠나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 집안이었다.

이것은 삶의 방향성을 가리킨다. 이전에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따라서 살았다. 어부였으니 날마다 바다를 좇아 다녔을 것이다. 물고기가 많은 곳을 좇아 다녔을 것이다.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좀 잘살아 봐야겠다는 목적으로 물고기를 좇아서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보니까 배도 장만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들 삶의 방향을 돌려놓는다. 자신들이 따라 살았던 것들을 곧바로 버렸다. 그들은 그 길로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버림이다. 예수님을 따르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버리고 끊어버릴 때 예수님을 따라서 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과거의 삶에 얽매여서 주님을 따라서 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참믿음이다. 참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믿음은 버리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데 방해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는 믿음이 참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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